영국왕실골프협회(R&A) 멤버인 화가 클레멘트 플로워가 1913년 5개월에 걸쳐 완성한 ‘위대한 3인방’으로 명명된 실물 크기의 유화 작품으로 R&A에서 보관 중이다. 왼쪽부터 존 헨리 타일러, 제임스 브레이드, 해리 바든. 3명의 위대한 골퍼들은 1주일에 2차례씩 짬을 내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2번 홀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뒤편에는 R&A 건물이 보인다.
영국왕실골프협회(R&A) 멤버인 화가 클레멘트 플로워가 1913년 5개월에 걸쳐 완성한 ‘위대한 3인방’으로 명명된 실물 크기의 유화 작품으로 R&A에서 보관 중이다. 왼쪽부터 존 헨리 타일러, 제임스 브레이드, 해리 바든. 3명의 위대한 골퍼들은 1주일에 2차례씩 짬을 내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2번 홀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뒤편에는 R&A 건물이 보인다.

사상 최고의 3인방

미국을 방문한 제임스 브레이드가 팬미팅에 참석한 여성 골퍼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제임스 브레이드가 팬미팅에 참석한 여성 골퍼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하고 있다.
영국 골프 전성기이던 19세기 말 골프 사상 가장 위대했던 3인방이 동시에 등장했다. 해리 바든(1870∼1937), 존 헨리 테일러(1871∼1963), 제임스 브레이드(1870∼1950)가 그 주인공. 이들은 ‘위대한 삼두마차(The Great Triumvirate)’로 불렸다. 로마 시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삼두정치’처럼 이들은 189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까지 21년간 무려 16차례나 디 오픈(브리티시오픈)을 돌아가며 제패했다.

그중 으뜸은 바든이었다.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우승을 휩쓴 바든은 현대 골프의 선구자다. 그리고 ‘바든 그립’으로 불리는 오버래핑 그립을 고안해냈다. 지금도 널리 애용되는 바든 그립은 왼손 검지 위에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올려놓는 형태다. 1870년 영국과 프랑스 해협 사이의 저지 섬에서 태어난 바든은 20세 되던 해 골프채를 들고 당시 ‘골프전쟁터’로 불렸던 스코틀랜드에 무작정 입성했다. 1893년 디 오픈에 처음 출전했지만 우승자에게 무려 22타나 뒤졌다. 바든은 2년 동안 스윙을 갈고닦으며 훗날을 기약했다.

테일러는 17세이던 1888년 프로로 데뷔했다. 프로 입문 첫해 디 오픈에 출전, 34년 동안 스코틀랜드 골퍼가 우승했던 전례를 보란 듯이 깨뜨리면서 최초의 잉글랜드 출신 우승자가 됐다. 타고난 ‘킬러’였던 테일러는 쟁쟁한 선수들을 차례로 제압하면서 영국 최고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1895년 바든과 테일러는 요크셔골프장의 프로대항전에서 마주쳤다. 팬들의 엄청난 관심이 쏠린 건 당연한 일. 맞대결에선 예상을 뒤엎는 이변이 벌어졌다. 테일러에게 5홀 뒤지던 바든은 포기할 줄 몰랐고 마지막까지 쫓아가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든은 다음 날 36홀 플레이오프에서 4홀 차로 테일러를 제압했다. 테일러는 바든의 스윙을 지켜보면서 그가 최고의 골퍼라는 걸 한눈에 알아챘다. 테일러는 비록 프로대항전에서는 패했지만 1894·1895년 디 오픈 2연패를 달성했다.

1년 뒤인 1896년 디 오픈. 2만여 명의 갤러리가 몰려들었다. 바든의 기세가 무서웠지만, 아직은 테일러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바든은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뒀으며, 영국은 “잉글랜드 섬 출신의 촌놈이 우승했다”며 경악했다. 대회가 끝난 뒤 테일러는 “이제껏 나를 망신 준 유일한 골퍼는 바든”이라고 말했다. 바든은 이후 전성기를 달리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4년을 포함, 디 오픈을 6차례나 제패해 ‘최다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테일러 역시 바든이라는 복병을 만났지만 디 오픈에서 5차례 우승하며 명성을 이어 갔다. 바든과 테일러는 미국에 진출,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의 탄생에 힘을 보탰다.

브레이드는 185㎝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가 일품이었다. 세인트앤드루스 출신의 스코틀랜드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골프 훈련을 탐탁지 않게 여겨 목공소 견습생으로 런던에 보냈다.

브레이드는 다행히 일요일에 골프를 할 수 있는 런던목공소의 조수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틈틈이 골프 실력을 다졌다. 세인트앤드루스 태생 특유의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브레이드는 16세에 이미 프로에 버금가는 기량을 갖췄지만, 24세 되던 해에 프로에 입문했다. 30세가 넘은 1901년에야 처음으로 디 오픈에서 우승한 늦깎이였지만, 10년 동안 5차례나 디 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배멀미 탓에 미국 진출에 거부감이 있었던 브레이드는 ‘최고로 성공한 골퍼’라는 칭호를 받았다.

남양주골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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