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 경제산업부장

정부가 ‘시장 실패’를 이유로 시장에 개입하는 전형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가 가격 규제(price controls)다.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에 상한, 또는 하한을 둔다. 가격 하한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최저임금제다. 노동시장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우리의 경우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 월급으로는 126만27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지난해에도 8.1%를 인상했는데, 4·13 총선 때 각 당이 앞다퉈 앞으로 4년 동안 8000∼9000원이나 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매년 10∼18%가량 인상돼야 실현 가능한 약속들이다. 이를 등에 업고 노조단체들은 내년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하고 있다. 오는 8월 정부의 최저임금 고시를 앞두고 노·사·정 간 갈등은 이미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최고임금 상한제 도입 주장까지 등장했다. 임금 격차를 해소하려면 대기업 등에서 고소득자의 임금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대기업 CEO들에게 근로소득 상위 10%, 연간 임금 1억 원 이상 임직원의 임금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의 임금 인상을 1% 정도 자제해도 6만 명의 청년이 취업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모든 규제의 속성이 그러하듯이, 가격 규제는 일정 수준까지는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면 시장 자체의 왜곡을 낳는다. 최저임금제도 마찬가지다. 애초 정책도입 목표는 ‘최소한의 생계’ 보장이다. 이게 보편적 복지 확대 바람을 타고 전체 근로자의 ‘평균임금’으로 목표치가 급상승하면서 갖가지 우려를 키우고 있다. 단지 영세사업장의 경영에 영향을 줘 저소득층의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로 세계적 권위자인 알베르토 알레시나,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부의 재분배 정책의 강도가 낮은 미국과 그게 높은 유럽의 차이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연구한 공저 ‘복지국가의 정치학’(Fighting Poverty in the US and Europe)에서 최저임금제를 사례로 들었다. 유럽의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53% 정도이고, 미국은 39% 정도다. 그렇다고 노동 가격 규제가 극빈층에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란다. 두 석학은 “노동시장 가격 규제는 내부자, 즉 대규모 산업 노조원들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 반면, 더 가난한 외부자들의 처지를 불리하게 만든다는 연구가 우리가 검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전한다. “노동 가격 규제가 소득을 재분배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혜택이 반드시 가장 가난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집단에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에 가까울수록 노동시장에는 취업을 포기하고 있던 진입자가 발생해 새로운 공급이 일어난다. 경제성장으로 고용수요가 늘지 않는 한 일자리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경우가 많아진다. 특히 비숙련,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그 와중에 대기업 노조는 최저임금 인상을 ‘발판’ 삼아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챙기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노동 공급을 감당할 적정수준(균형임금)보다 높은 나라들에서는 ‘노동 암시장’이 형성된다. 고용주는 최저임금의 근로자 고용을 꺼리고, 일자리가 아쉬운 근로자는 법에 저촉되는 줄 알면서도 최저임금보다 싼 임금 근로자가 되기를 자청한다. 유럽에선 이를 검은 노동력(black labor)으로 부른다. 스페인의 경제학자들은 국가에 보고된 실업자의 3분의 1가량이 노동 암시장에 속해 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가 경제학원론 교재 격인 ‘경제학(Economics)’에서 왜 가격하한제가 비효율적인지를 설명하면서 소개한 것이다.

노조단체의 주장대로 정말 최저임금을 올릴수록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 향상되는 것인지, 소수의 혜택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경제 수준에는 노동가격 규제의 정책적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우리 경제·사회의 구조적 복합 문제인 청년실업을 또 다른 노동 가격 규제로 해결하려 기업들에 억지를 부릴 때가 아니다. 거기엔 또 다른 시장 왜곡이 예고될 뿐이다.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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