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새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를 통해 기초과학 분야의 신진 연구자에게 ‘생애 첫 연구비’로 연 3000만 원씩 최대 5년간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최근 발표했다. 이런 ‘한 우물 파기’ 연구 지원 정책은 우리의 노벨 과학상 수상 잠재력을 일본 수준으로 높여주리란 기대를 깔고 있다. 이미 5년 전에 설립한 기초과학연구원(IBS)에 연 25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기초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바 늦어도 10년 안에 한국에서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탄생하리라 예상된다.
단순 정량적 평가로 볼 때, 국가 전체의 총 연구비와 연구 인력의 규모, 연구논문과 특허의 연(年) 총 생산 규모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다음의 세계 5위에 이르렀다. 예컨대, 영국·프랑스·이탈리아보다 연구비 투자가 많고, 연구 활동도 활발하다는 뜻이다. 심지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율 4.29%는 세계 1위다. 그러나 국제과학논문(SCI 등재 저널)의 한국 과학자 점유율은 2.7% 수준으로, 세계 10위권에 속한다. 특히, 파급 효과가 큰 기초원천연구의 생산성과 대학의 연구 역량은 언급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뒤처진 상태다.
지금까지 우리의 R&D 비용은 주로 연구동(棟) 건설, 연구 기자재 구입, 인건비 등에 쓰였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석학 12명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가 서울대 자연대학의 연구 역량을 평가한 보고서가 지난 3월에 발표된 바 있다. 연구실험실, 기자재, 인력, 인건비 등 연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반조건(인프라)은 어떤 선진국에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연구 성과는 따라 하기 연구(me-too science)에 치중돼 있고, 모험적인 원천(源泉)연구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하드웨어 중심의 연구비 투자, 그런 투자 대비 ‘단기적’ 연구 성과에 초점을 둔 것이 기본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지난 수년간 정부 정책은 연구비 사용의 온갖 ‘규제 강화’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연구 목표와 연구 의욕, 연구의 창의력은 사라지고, ‘연구 행정’만 남게 됐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모험적인 원천연구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험적인 원천연구는 필수적으로 ‘기다림’의, ‘열린’, 그리고 ‘팀워크’의 탐구 문화에서 가능하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기다림의 자세, 전통과 익숙함을 탈피하려는 열린 지성, 그리고 연구자 개개인보다 팀워크가 발산하는 ‘공동 창의력’의 생산성을 존중하는 과학문화가 자리 잡지 않는 한, 모험적인 원천연구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거대 연구비가 투자되지만, 팀워크가 없는 온갖 ‘공동 연구’는 너무나 비생산적이다. 이제 ‘생애 첫 연구비’의 투자액과 기간 못잖게 이 소프트웨어적 기본 조건들을 중시하는 국가 지원 정책들이 더 필요하다.
그런 조건들이 구비될 때 노벨 과학상 수상은 한층 앞당겨질 수 있다. 무엇보다 소수의 과학영웅 탄생에 그치지 않고, 국가 전체가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과학기술 공동체’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기초연구의 지식 창출과 응용연구의 기술 개발이 융합적으로 발전하고, 국격(國格)과 국력(國力)이 동반 상승하는 초일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21명의 노벨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국력이 점점 쇠락해지는 일본을 닮지 말아야 한다. 이제 정말 새로운 연구 문화와 관련 연구 지원 패러다임을 고뇌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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