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조상은 북방기마민족이라고 한다. 한반도 북쪽에서 도래했고, 유목을 위해 말을 잘 타야 했으며, 생존을 위해 활쏘기가 필수였던 것 같다. 오래전 중국에서는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족이라고 불렀다. ‘夷(이)’에는 대단한 궁수(大+弓)라는 뜻이 있으니 말과 더불어 활과 인연이 깊은 민족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수렵도에는 말과 활이 모두 등장하니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2014년 투르크메니스탄 부임 후 신임장 제정을 위해 주재국 정부가 지정한 오구스켄트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눈에 익은 그림이 하나 보였다. 말 타고 활 쏘면서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은 과거 돌궐족의 일파인 오구스족의 한 갈래라고 들었다. 과거 한민족과 더불어 유라시아 대륙을 공유하면서 유목하던 민족이라서 우리와 유사한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증명하는 그림이었다.
며칠 후 외교단 부임 인사를 위해 주재국 내 터키 대사관을 방문했다. 터키 대사는 집무실에서 나를 맞이했는데, 집무실 소파 테이블 위에 터키 국립박물관 소개 책자가 놓여 있었다. 책표지에는 고구려 수렵도 비슷한 그림이 있었다. 왜 고구려 수렵도가 여기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터키 대사는 의아해 하면서 터키 역사문화를 소개하는 국립박물관의 대표적 그림이 그렇다고 했다. 터키도 말과 활의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증거이다. 그러고 보니, 투르크메니스탄과 같이 터키도 오구스족이 건설한 국가이다.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은 말을 좋아한다.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이 오래전부터 말과 매우 긴밀히 얽혀 지내왔기 때문에 그런가 생각했다. 그래서 신임장 제정 시 ‘신라 기마상’을 선물로 증정하고, 우리 민족도 말과 인연이 각별하다고 설명했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은 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면서 경청했다. 두 나라는 말과 활이 어우러진 사냥의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고 첨언했다. 연말이 되자 외교활동의 일환으로 투르크메니스탄 고위인사와 중앙아시아 출신 대사들에게 고구려 수렵도가 그려진 연하장을 돌렸다. 이후 말과 활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었다.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이 확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
유목민족은 이동하는 민족이다.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서도 부족 구성원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별도의 병참이 필요하지 않다. 기병과 궁수가 하나가 된 병사의 전투력은 신속하면서도 천하무적이다. 그래서 부족이 뭉치고 민족의 움직임이 한 번 시작되면 유라시아 내륙에서는 아무것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만주를 거쳐 중앙아시아와 터키까지 소위 ‘돌궐 벨트’라는 하나의 활동 무대가 고래로부터 있어 온 것 같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투르크메니스탄도 한반도와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유라시아는 말과 활의 역사 무대이다. 유목민족에게 말과 활은 생존의 핵심 수단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이동하면서 살아야 하고 필요에 따라 전투력으로 전환되면 대적이 힘드니 역사를 바꾸는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말과 활의 주인이 자주 중국 역사의 주역이었고, 중동과 유럽의 역사도 종종 바꾸어 놓았다. 흉노가 그러했고, 돌궐이 그러했고, 몽골이 그러했다. 인도의 최근 천년도 돌궐 왕조와 몽골(현지어로는 무굴) 제국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수렵도를 공유하는 돌궐 벨트를 따라 과거 한민족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고, 우리 선조들의 외교 활동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지리적 거리와 냉전의 지정학으로 인해 우리 사고가 단절돼 왔다. 과거 우리의 가까운 이웃, 또는 형제를 발견하고 이러한 유대감 또는 공감대 속에서 미래를 그려보면 어떨까?
◇정태인(56) △제20회 외무고시 △주노르웨이2등서기관 △주말레이시아1등서기관 △주러시아1등서기관 △남동아프리카과장 △동북아시대위원회 파견 △주프랑스참사관 △주아제르바이잔공사참사관 △아프리카중동국심의관 △주인도공사겸총영사 △주투르크메니스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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