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 정치부장

혁신 항해에 나서려던 새누리호(號)가 출발도 하기 전에 좌초하고 말았다. 그 원인(遠因)까지 따지면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물론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보이지 않는 실세들도 모두 침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가히 ‘정치적 세월호’사태라고 할 만하다.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에 최악의 선택을 한 이준석 선장처럼, 새누리호의 배 바닥에 직접 구멍을 낸 것은 ‘대주주’인 친박(親朴)세력이었다.

이번 항해가 4·13 총선 참패 책임을 물어 자신들을 축출하려는 수순이라고 판단, 차라리 함께 침몰하는 일이 있더라도 항해를 저지하기로 한 것이다. 친박 책임론에 제동을 걸어온 정진석 원내대표조차 “친박 자폭테러로 새누리가 공중분해됐다”고 규정했을 정도다. 실제로 당의 ‘옥새’를 쥔 자칭 ‘신박(新朴)’ 원유철 의원부터 17일 상임전국위원회에 불참함으로써 좌초에 적극 가담했다. 중앙선관위에는 아직 ‘대표자 김무성’으로 등록돼 있지만, 대표직 사퇴 이후 당헌·당규에 따라 당시 원내대표였던 원 의원에게 법률적 권한이 넘어갔고, 정 원내대표는 아직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라 그 권한을 넘겨받지 못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혁신의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4·13 총선 결과는 당 차원에서는 참패였지만 친박계 입장에서는 상당한 성공이었다. 122명의 당선자 중 무려 70명 내외를 배출해 입지를 강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친박계의 분화와 이탈, 박 대통령의 거리 두기 등으로 당권을 비주류에게 내줬던 상황을 역전시킬 권력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총선 참패는 친박계의 2선 후퇴를 강요했다. 공천과정에서 ‘배신의 정치 심판’ ‘진박 감별’ 등 전근대적 행태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 부메랑이 돼 정치적 귀양이라도 가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두 개다. 첫째는 책임을 인정하고 계파 해체와 백의종군을 실천하는 것이고, 둘째는 당 안팎의 여론이나 명분을 무시하고 친박세력을 이용해 당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새누리당은 일시적 진통을 겪겠지만 외부인사 영입 등 ‘더불어민주당식(式) 수술’을 통해 정치적 암 덩어리를 도려냄으로써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정권 재창출도 시도해볼 수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원천적으로 혁신이 불가능해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면서 비박(非朴)계 등이 탈당하는 등 분당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불행히도 친박계는 후자를 선택했다. 총선 참패의 책임을 부인하는 엉터리 진단에 불순한 의도까지 개입되자 당연히 처방은 더 왜곡됐다. 비상대책위원장과 혁신위원장을 분리함으로써 혁신위원회를 사실상 형해화시킨 것이나, 비대위원장을 정 원내대표가 겸임한 것은 혁신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당 안팎의 비판이 고조되자 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에 비박계 인사를 일부 포함시키고 비박계의 대표주자이자 ‘독불장군’이라고 불리는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내정했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의 이런 선택은 친박의 구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바꿀 수도 없었다. 실제로 비대위 역할은 전당대회 관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혁신위 역시 아무리 외부 인사를 수혈해도 실행 권력이 없는 데다 친박계의 저항으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존재감조차 희미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박계는 이 정도의 프로그램조차 폐기시킨 것이다. 친박, 나아가 새누리당의 정치적 병이 얼마나 위중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새누리당이 제대로 된 혁신에 다시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친박 패권주의는 야권의 친노 패권주의를 이미 능가하고 있다. 문제는 새누리당 실패의 후폭풍이 새누리당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임기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위험수위를 오르내리는 경제와 안보 위기를 헤쳐나갈 토대와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집권여당의 뒷받침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신뢰를 잃은 새누리당은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 친박이 결국 ‘부박(부담이 되는 친박)’을 거쳐 배신의 정치를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친박은 작은 권력을 지키려다 국민에게도, 박 정권에도 더 큰 죄업을 쌓고 있다. 친박이라는 명칭이 희대의 정치적 오명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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