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필훈 커피리브레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본사 사무실에서 갓 볶은 원두를 들어 보이며 밝게 미소 짓고 있다. 서 대표는 “재료 선별은 물론이고 로스팅부터 추출까지 조리 과정에서 제대로 된 기술력을 발휘해야 고객을 감동시키는 스페셜티 커피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서필훈 커피리브레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본사 사무실에서 갓 볶은 원두를 들어 보이며 밝게 미소 짓고 있다. 서 대표는 “재료 선별은 물론이고 로스팅부터 추출까지 조리 과정에서 제대로 된 기술력을 발휘해야 고객을 감동시키는 스페셜티 커피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제3 커피물결’주도하는 서필훈 커피리브레 대표

“하루 24시간 커피 생각만 합니다. 커피에 제 영혼을 뺏겼다고 할까요.”

서필훈(40) 커피리브레 대표는 2010년 주요 커피 산지인 과테말라의 커피 농장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과테말라 할머니의 눈에도 좋은 생두(가공하기 전의 커피 열매)를 고르기 위해 농장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열심히 관찰하고 맛보는 그가 커피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는지, 할머니는 “당신은 몸속에 피 대신 커피가 흐르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자칭 ‘커피에 홀린 사람’이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갖고 온전히 열정을 바치는 분야가 최상급 품질의 ‘스페셜티 커피’다. 서 대표는 2008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가 인정하는 ‘큐 그레이더(생두 감별사)’ 자격증을 따냈다. 2009년부터는 1년에 100일 이상 커피 산지를 돌아다니며 유기농 생두를 들여와 직접 커피를 볶고 판매하는 커피전문점 ‘커피리브레’를 열었다. 고객들의 반응도 좋다.

세계 커피 로스팅 대회인 ‘월드 로스터스 컵’에도 참가해 2012∼2013년 2연속 우승했다. 외국 커피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지배하고 있는 국내 커피 시장에서 당당히 맛과 품질로 승부수를 띄우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서 대표를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커피리브레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도 서 대표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커피 연구에 여념이 없었다. 강렬한 인상, 다부진 체격을 지닌 그는 무언가에 한번 꽂히면 그것만 파고드는 고집 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풍겼다. 그는 “하루 6시간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온종일 사무실에서 생두를 감별하고, 볶아서 원두를 만들고, 커피를 내려 맛을 테스트하는 등 커피 연구에 매진한다”고 말했다. 커피에 빠져 살다 보니 지난해엔 충북 청주에 사는 부모님을 2번밖에 뵙지 못했다.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독하게 커피에만 매달리는 이유를 묻자, 서 대표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커피만큼 나를 미치도록 매혹한 게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서 대표가 특히 애착을 갖고 보급에 힘쓰는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하자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스페셜티 커피는 전문가들의 커핑(cupping·와인 테이스팅처럼 커피의 맛과 향을 평가하는 것)을 거쳐 평가 점수가 국제 기준인 80점을 넘은 일종의 고급 커피를 뜻한다. 전문가들은 생두와 원두(생두를 볶은 것) 검사를 비롯해 규격에 맞는 로스팅, 커피의 향, 맛의 균일성 등 10가지 항목을 심사해 점수를 매긴다.

서 대표는 “좋은 재료를 선별하는 것은 기본이고 로스팅부터 추출까지 조리 과정에서 제대로 된 기술력을 발휘해야 커피 본연의 특성과 품질을 그대로 살린 한 잔의 스페셜티 커피가 완성된다”며 “주변에 소고기는 많아도 정말 맛이 뛰어난 소고기를 찾기는 쉽지 않듯이 90점이 넘는 스페셜티 커피를 만나는 건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 북유럽 등에서 발달한 스페셜티 커피를 국내에서 제대로 알리려면 커피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지던 중 미국에서 생두 품질을 평가하고 커피 맛과 향을 감별하는 전문가를 인증하는 큐 그레이더 자격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 대표는 “커피 붐이 일고 난 뒤 지금이야 큐 그레이더 자격증을 보유한 한국인만 1000명을 훌쩍 넘지만, 2008년 당시엔 자격증을 갖춘 사람도 없었고 정보도 부족해 시험을 치르면서 진땀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5일간 생두 감별과 커피향 구별, 커핑 능력 등을 평가하는 21개 과목 시험을 통과하고 고대하던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서 대표는 원래 역사학도였다. 1999년 고려대 사학과(서양사 전공)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군 장교로 군 복무를 끝낸 뒤 2003년 복학해 석사 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까지도 ‘이 길이 진정 내가 가야 할 길인가’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2005년 일식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식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형식을 너무 중요시하는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다 고려대 후문 쪽에 위치한 ‘보헤미안’이라는 카페에 자주 들러 커피를 즐기곤 했는데, 거기서 맛본 ‘강배전(강하게 오래 볶은 것)’ 커피 한 잔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서 대표는 “진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커피를 왜 시작하지 않았지’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보헤미안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로스팅과 핸드드립 등 커피 제조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 대표는 보헤미안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정직원이 되면서 ‘장인정신’을 갖고 커피를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보헤미안은 한국 바리스타 1세대 박이추 선생의 수제자인 최영숙 씨가 물려받아 운영하던 카페. 자유분방해 보이는 카페 이름과 달리 보헤미안에서의 ‘수련’ 과정은 엄격하고도 혹독했다. 그는 “홀서빙부터 배우기 시작해 청소와 설거지까지 한 치의 실수 없이 원칙대로 완수해야 한다는 지침을 받았는데, 처음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나중에는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모든 과정이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찻잔에서 고객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우유 비린내가 나지 않도록 우유가 닿았던 찻잔은 반드시 다른 그릇과 따로 설거지해야 한다는 등의 원칙은 그가 보헤미안에서 배워 지금도 고수하는 것들이다. 서 대표는 “평생 도자기를 구운 장인이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깨부수듯, 내가 만든 커피에서 나만의 색깔이 배어 나오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다그치며 노력하는 자세를 스승인 최영숙 보헤미안 점장에게 배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페셜티 커피를 본격적으로 만들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2009년 10월 연남동에 커피리브레 1호점을 열었다. ‘리브레’는 스페인어로 ‘자유롭다’는 뜻. 자신의 색깔을 담은 커피를 자유롭게 만들겠다는 서 대표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명문대를 나와 ‘커피 장사’에 뛰어든 자식이 못마땅해 친척들에게 “아들이 박사학위를 따려고 미국으로 유학 갔다”고 둘러대던 서 대표의 부모도 점차 아들의 열정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은 부모님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며 미소를 지었다.

업계에서 입지를 다져 가던 서 대표는 2012년과 2013년 연이어 월드 로스터스 컵에 출전해 우승하면서 국제적인 명성도 얻었다. 미국과 일본, 스웨덴, 과테말라 등 커피 강대국의 유명 바리스타들과 맞붙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그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모든 참가자가 점수를 매겨 최고의 커피를 뽑았는데, 정작 나는 내가 만든 커피를 알아보지 못하고 최고 점수를 주지 못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서 대표는 좋은 생두를 구하기 위해 1년에 100일 이상을 해외 커피 농장에서 지낸다. 그는 “봄에는 과테말라나 온두라스 등 중미, 여름에는 볼리비아 등 남미, 겨울에는 케냐나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에서 직접 발품을 팔아 품질 좋은 생두를 구한다”고 ‘비결’을 공개했다. 좋은 품질의 생두는 값이 비싸도 무조건 확보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그는 “커피 농가에 제대로 된 값을 지불해야 그들이 좋은 커피를 생산하는 데만 몰두하게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안정적으로 좋은 재료를 납품받아 ‘윈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셜티 커피는 시중에서 한 잔에 6000원 이상, 비싸게는 1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지만, 서 대표는 직접 외국을 다니며 어렵게 확보한 생두를 가공해 만든 스페셜티 커피를 한 잔에 4000원만 받는다. 좋은 재료를 들여와 맛과 품질이 뛰어난 커피를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서 대표의 매장 운영 철학이 소비자의 공감을 얻은 덕분에 커피리브레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과의 경쟁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감사하게도 장사가 잘되고 있고 성장 속도도 빠른 편”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업이 확장돼 현재 서울 시내에 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원두 유통 사업도 하고 있다. 커피리브레의 연간 총매출은 60억 원에 이른다.

서 대표는 커피에 대한 초심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잃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니카라과에 56만1000㎡ 규모의 커피 농장을 구입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경영 계획이란 것을 세워본 적은 전혀 없다고 한다. 계획을 세우는 순간, 못하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서 대표는 “단순히 큰돈을 벌기 위해 이것저것 따지기보다는 후회를 하더라도 좋아하고 원하는 일에 도전해 보는 편이 낫다”며 “우리 청년들이 망설이지 말고 젊음을 무기 삼아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뛰어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 끝에 서 대표에게 ‘커피와 인생이 혹시 닮은 점이 있느냐’는 진부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답변은 커피에 영혼을 뺏긴 사람다웠다. “나를 가장 속상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지만 가장 행복하게도 하는 게 커피와 인생입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관련기사

최준영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