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 / 한국문학번역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자,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원작의 문체와 향기를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영어권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는 멋진 영어로 옮겨 줬기 때문이다. 데버러의 훌륭한 번역이 없었다면 ‘채식주의자’는 어쩌면 수상의 영예 못 누렸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이 번역서에 주어지고 작가와 번역가가 공동 수상하면서 번역가의 중요성은 한층 더 부각됐다.

예전에는 번역이 원작을 훼손하는 열등한 것이라고 여겨 ‘번역은 반역’이라고도 했지만, 지금은 번역가를 반역자가 아닌 ‘문화 중재자’라고 부른다.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중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번역은 나를 국경 너머 다른 나라로 데리고 가는 고마운 친구”라고 했다. 한국문학(文學)과 인문 도서를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해 해외에서 출간하는 한국문학번역원은 우리의 문학과 문화를 해외로 내보내는 창(窓)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바람직한 번역가인가. 번역가는 우선,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문장력이 탁월해야 하며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야 한다. 데버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영문과에서 글쓰기 훈련을 받았고, 스스로 작가가 되려고 창작을 했던 사람이며, 한·영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아는 이상적인 번역가다. 또, 번역가는 작품이 좋아서 애정을 갖고 번역해야지, 돈이나 연구가 주된 목적이면 좋은 번역이 나오기 어렵다. 데버러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만 골라서 번역하며, 학자들의 딱딱한 학문적 번역과는 달리 유연하고 세련되게 번역한다.

작가에게 절실한 번역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잘 아는 우수한 원어민 전문가다. 모국어가 아니면 멋지고 좋은 번역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들에겐 모두 원작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아는 전담 원어민 번역가들이 있었다. 반면, 원어민은 원작 국가의 문화를 잘 몰라서 오역할 수도 있기 때문에 늘 원작 언어 감수자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예컨대 ‘춘부장(椿府丈)’을 ‘디렉터 춘(Director Choon)’이라고 번역한 원어민도 있었다. 그래서 번역어가 모국어 수준인 한국인 번역가도 바람직하다.

원어민 번역가의 체계적 양성을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은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2년제인데도 비법정기구여서 번역학 석사 학위를 수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좋은 해외 번역가 지망생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번역아카데미’를 ‘번역대학원대학교’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면 데버러 같은 수준 높은 번역가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될 것이다. 번역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외국인 번역가들은 졸업 후,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게 되지만, 번역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번역은 시간 있을 때에나 하는 부업이 된다. 그래도 지난해에는 번역아카데미 출신 3인이 코리아타임스 주최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교수인 얀 디륵스는 대산문학상 번역상을 받는 성과를 내서 고무적이었다.

작가 안드레스 솔라스 펠리페는, 번역가에게는 연애편지를 읽는 병사의 애정과 방정식을 푸는 물리학자의 전념, 리듬을 듣는 음악가의 감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데버러는 거기에 부합하는 번역가이고, 우리 작가들에게는 여러 명의 데버러가 필요하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는 번역하면 사라진다”고 했지만, 번역만 잘하면 외국 시도 얼마든지 감동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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