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일 동안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장 먼저 하게 된 생각은 자기반성이다. 독성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시야를 좀 더 넓히지 못하고 먹는 것과 식품 안전에만 집중해 왔을까?
사실, 우리는 먹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호흡을 하고, 더 많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으니 대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물질은 어쩌면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소비자가 먹는 것은 매우 까다롭게 살펴보고 깐깐하게 고르지만, 그 외의 생활용품에 대해서는 조금 너그러운 것 같다. 소비자만 너그러운 게 아니다. 정부 역시 너그럽다. 식품에 사용되는 첨가물들은 첨가물 자체에 대한 안전성 시험을 하고 각각의 식품에 얼마까지 사용해도 안전한지 계산한 후에 안전한 범위 내에서 사용하도록 기준이 정해져 있는 반면, 생활용품에 사용되는 화합물에 대해서는 사전 안전성 평가(독성시험)가 요구되지 않는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핵심은 사전승인 없이 어떤 화합물을 생활용품에 첨가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생활용품은 단순한 공업제품으로 분류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리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위생용품에 대해서는 그 관리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담당하도록 입법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주방용 세제나 소독저처럼 먹는 것과 관련 있는 것들뿐이다.
식품에 들어가는 화합물은 독성시험을 거쳐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왜 다른 생활용품들은 이런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았을까? 이런 제도를 만들 의도나 생각 자체가 없었는지, 시도가 있었으나 반대에 부닥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도를 만들 시도가 없었다면 방심의 결과일 것이고, 반대가 있었다면 경제적인 논리가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실제 많은 규제를 정하거나 없애는 데 경제 논리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우리나라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규제개혁위원회라는 독특한 기구가 있다. 이 위원회의 위원 중 절반 이상이 경제 전문가들이다. 이 기구의 설립 목적 자체가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들을 없애는 것에 있으니, 이 위원회의 결정 중 많은 부분에 경제논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식품 관련 규제건, 환경 관련 규제건 정책이 나올 때마다 기업에 얼마나 부담을 주겠는가 하는 경제 분석이 들어간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규제란 구시대적 산물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에서 지정하는 틀보다는 자유로운 경쟁에 의한 생산 활동이 발전된 미래를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식품이나 환경적 측면에서 보면, 지금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대를 벗어나 소비자들이 안전과 건강을 중시하는 시대다. 그러나 규제나 기준 없이 자유로운 경쟁 상태에서 안전과 건강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어 내려면 안전과 관련된 과학적 지식을 국민 모두가 이해하고 있어야 어떤 규제 없이도 알아서 이러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정도의 교육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이 경우에 사회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개발 단계에서 안전성 시험을 거치고 사전승인제를 도입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대신 단가가 올라가는 부담을 안을 것인가, 아니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위험 부담을 안고 갈 것인가? 사실 시험을 거치지 않은 물질이라 해서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 실제 시험을 했을 때 높은 농도에서도 독성이 나타나지 않는 화합물이 매우 많다. 이런 확률에 기대를 걸고 사전승인 없는 생활용품들을 사용해 왔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경제를 살려 미래를 살린다는 길을 택해 왔다. 그런데 이번 살균제 사건이 그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건강한 아이들이 없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아무리 부유해도 지속 가능하지가 않다. 규제에 들어가는 비용이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키더라도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는 좀 더 보수적인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다시 살균제의 예를 들어 보자면,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새로운 제품에 대해서는 식약처에서 사전 안전성 심사를 하게 되었고 그 후로는 새로 출시된 제품이 없는 것으로 안다. 산업부와 식약처의 기능이 명백히 대비되는 현상이다.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용품과 거기에 사용되는 화합물은 매우 많아, 모두 안전성 심사를 거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먹는 것 외에 호흡이나 피부를 통해 몸으로 흡수될 수 있는 제품들은 통합해서 안전성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신뢰를 확보하는 길이다. 이미 화장품은 약이나 식품이 아니어도 식약처에서 관리하고 있다.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화장품도 안전관리가 이뤄지고 있는데, 신생아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가습기 살균제가 단순한 산업물질로 관리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관되긴 했지만 새로운 제도 아래서 신제품이 자리 잡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현상을 과다 규제로 인한 산업 발전의 저해로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고, 철저한 안전성 심사에 의한 소비자 보호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빚어진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철저한 논의를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합의 아래 정책 방향이 결정돼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착한 규제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부담도 기꺼이 감수하는 미래지향적인 시대에 들어섰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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