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송(南宋) 때에 한세충(韓世忠)이라는 장군에게 양홍옥(梁紅玉)이라는 아내가 있었다. 금나라와 전쟁이 벌어졌는데, 장군의 아내가 손수 만두를 빚어 군사들에게 나눠주려 했지만 군사의 수효가 너무 많아서 넉넉히 나눠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두의 양이 많지 않으니까 마음(心)에 점(點)이나 찍으십시오’라고 하였다고 한다.
‘벽암록’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다. 덕산(德山·780∼865) 스님이 ‘금강경’을 깊이 연구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속성이 주(周) 씨라서 주금강(周金剛)이라 칭송받아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덕산은 남쪽에서 유행한 선종에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그 본성을 알면 곧 성불한다(見性成佛)’는 말을 듣고 불쾌하게 여기던 중에 용담 스님이 유명하다고 하여 그와 겨루기 위해 찾아가던 중 예주(澧州)에서 다리를 건널 무렵 시장기를 느꼈다.
마침 길목에서 한 할머니가 떡을 팔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떡을 사 먹으려고 하자 할머니가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면 공짜로 떡을 주고 답을 하지 못하면 떡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등에 진 걸망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라고 하자 덕산이 “금강경소초(金剛經疏초)”라고 대답했다. 노파는 다시 “그 가운데에는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님은 점심을 하고자 하는데, 점찍고자 하는 그 마음(點心·마음을 둔 것)은 과거심입니까, 미래심입니까, 현재심입니까”라고 하자 덕산은 아무 대답도 못 하였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은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었다. 점심은 오반(午飯), 중식(中食), 새참, 간식(間食) 등 다양하게 불린다. 점심이란 하루 두 끼를 먹었던 중국에서 아침과 저녁 사이에 드는 간단한 식사를 일컫는 말이었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마음에 점을 찍고 넘겼다는 뜻과 한 끼 식사 중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에 먹는 간단한 음식이란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후자와 같은 뜻으로 옛날에 중국에서는 큰 잔치 때 장소를 옮겨 가며 음식을 대접했기 때문에 다음 장소의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간단한 식사를 대접했는데 이것을 점심이라 했다. 한국에서 현재 점심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 드는 세 끼니 중의 하나다. 그러나 16세기에 나온 ‘노박집람(老朴集覽)’이라는 책에 “아침 식사 전후, 그리고 오후 신시(申時·3∼5시) 전에 음식을 조금 먹는 것을 점심이라 한다. 지금은 세간에서 작은 만두(찐빵)를 점심포아(點心包兒)라 한다”고 나오는 것을 보면 점심은 곧 만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시세끼 시대에 사는 요즘 다시 아침밥을 거르고 ‘아점’을 먹거나 아침이란 개념을 의식 속에서 지운 사람도 많다. 학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장인 중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침을 먹지 못하고 점심을 기다릴까 생각하니 딴 세상에 온 느낌이 든다.
담산언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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