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레이황은 ‘1587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라는 저서를 통해 “1587년은 실패의 기록으로 역사 속에 남겨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만력제 사후 30년 명나라는 여진족의 청나라에 망한 것이다.
2015년 말부터 최근까지 국내 이동통신 시장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심사가 175일째를 맞은 가운데, 이통 업계가 M&A 논쟁에 역량을 집중하며 서비스 경쟁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이통사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요금이나 서비스 경쟁에 사용되는 마케팅비를 절감하며 호실적을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프라와 서비스를 갖추고 있다는 국내 이통 산업에 아무 일도 없는 사이, 해외에서는 방송·통신·콘텐츠 융합이 활발하게 일어나며 소비자 후생이 증가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업계가 ‘골든 타임’을 흘려보낸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가장 큰 피해자는 소비자들이다. 더욱이 글로벌 인터넷 기반 미디어 사업자(OTT)의 국내 진출로 국내 미디어 산업의 종속 가능성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다.
최근 모 부처 공무원은 사석에서 “통신 사업은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했다. 네트워크를 깔아놓으면 현금이 알아서 들어오니 이보다 쉬운 사업이 없다는 얘기였다. 네트워크 사업은 특성상 초기 진입 장벽이 높은 데다, 이용자가 늘수록 비용이 감소하는 자연독점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통 산업을 땅 짚고 헤엄치기로 만드는 것은 눈치를 보며 경쟁 실종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일 수 있다. 결국 골든 타임을 놓친 대가는 이통 소비자와 이통 업계의 몫이다.
임정환 경제산업부 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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