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경기 연천군 왕징면 나룻배마을 입구에서 홍용표(왼쪽) 통일부 장관과 착한봉사단, 고려대 사회봉사단 등이 옹벽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지난 14일 오후 경기 연천군 왕징면 나룻배마을 입구에서 홍용표(왼쪽) 통일부 장관과 착한봉사단, 고려대 사회봉사단 등이 옹벽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통일부·농협, 경기 최북단 나룻배마을 벽화 봉사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한 차는 자유로를 따라 북으로, 계속 북으로 달렸다. 라디오에서는 북한이 국내 방산업체들에 해킹 이메일을 유포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파주시 문산을 지나 더 직진하다 개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방향을 틀어 20여 분을 더 직진하니 철조망이 얽혀 있는 임진강변과는 사뭇 다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나왔다. 예부터 임진강을 통해 개성으로 가는 나룻배 터로 유명했던 경기도 최북단 연천군 왕징면 북삼로 나룻배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서는 고려대 학생들이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크레파스로 벽화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크레파스와 페인트가 잔뜩 묻은 옷을 입고 연신 웃으며 그림을 그리던 학생들은 봉사의 의미에 대해 묻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고려대 사회봉사단 8기 기장인 물리학과 4학년 유민현(24) 씨는 “봉사는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봉사활동이 탈북민들과 서로 잘 이해하고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 “나룻배마을이 통일의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농협중앙회는 농림축산식품부·통일부·고려대와 공동으로 민(民)·관(官)·학(學)이 함께하는 ‘깨끗한 농촌 만들기’ 행사를 나룻배마을에서 개최했다. 이 마을은 지난 2009년 황해도 일대 홍수가 나자 북한이 남한에 통보 없이 임진강 상류 황강댐을 방류해 주민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던 분단의 아픔이 있는 곳이다. 그만큼 첨예한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동시에 남북 교류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지역에서 남북 소통의 장을 만든 것이다.

고려대 사회봉사단과 새터민으로 구성된 남북하나재단의 착한(着韓)봉사단은 이날 ‘평화통일과 농촌의 미래비전’을 주제로 마을 옹벽에 타일벽화를 그리고 꽃밭도 만들었다.

각 가로 32m, 43m에 달하는 두 개의 옹벽에는 사계절을 표현하는 그림과 통일을 염원하는 상징물들이 그려졌다. 고려대 사회봉사단이 자료조사와 도안 작업을 하는 데 한 달여가 소요됐다. 갖가지 색의 페인트만 총 100ℓ가량이 들어갔다. 이번 봉사를 위해 고려대 사회봉사단 외에도 미술동아리 ‘서화회’도 참여했다.

디자인조형학부 이인정(여·22) 씨는 “비무장지대(DMZ)와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이곳에는 철새 두루미가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가며 마음껏 쉬고 간다고 해서,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 두루미와 푸른 한반도기를 그려 넣었다”면서 “이곳에서 새터민들과 함께 그림을 그린다는 게 정말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처음에는 소통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주셨고 그분들의 인생에 대해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착한봉사단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함께 참여한 이들이 많았다. 어린아이들은 강렬한 봄 햇살이 내리쬐자 땀을 흘리면서도 고사리 손으로 작은 붓을 열심히 움직여 그림을 그렸다.

한 남자아이가 “엄마, 갈색 말고 초록색 물감으로 그리고 싶어요”라고 투정을 부리자 최은희 씨가 “그럼 나뭇가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예쁜 나뭇잎을 그려볼까”라며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도왔다. 최 씨는 6년 전부터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청소년 공부방, 장애인 돕기 활동 등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는 “남한에 와서 가족이 없으니 주위를 돌아보게 됐고 어르신들을 돕는 봉사활동부터 시작했다”면서 “오늘은 아들과 함께 왔는데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각자 활동하던 새터민 봉사단체들은 지난해 남북하나재단의 지원으로 착한봉사단을 결성했고, 전국 11개 팀으로 구성됐다. 고려대는 착한봉사단과 함께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 개발, 전문적인 봉사 컨설팅을 담당하며 연말에는 활동을 기록한 ‘착한 백서’를 제작해 봉사를 장려할 계획이다. 각 팀마다 학생들 4명씩을 배정, 최근 지역별 1차 답사를 통해 현장의 어려움과 요구를 확인하는 시간도 가졌다.

사회봉사단장인 어도선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새터민들이 봉사를 통해 마음을 열고 자존감도 회복하는 계기가 되고, 이런 이야기들이 북한에도 전달되면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들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김정식 농협중앙회 부회장 등 다른 참가자들도 정장이 아닌 작업복을 입고 붓을 들었다. 홍 장관은 “나눔은 나눌수록 커진다”면서 “이곳에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고 그것이 통일의 열기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부회장은 “연천군은 남북관계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불안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휴전선 접경 지역으로 평화의 중요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의미있는 농촌”이라면서 “민·관·학이 함께하는 봉사활동이 평화통일의 작은 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나룻배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 행사도 마련됐다. 봉사단은 직접 북한식 두릅냉면과 평양만두 등을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홍 장관도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나섰다. 순대를 썰고 냉면과 만두를 날랐다. 서툰 손동작이었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꽤 많은 접시를 채워나갔다.

마을 이장 전해원(47) 씨는 “최북단 우리 마을은 군사적 압박이 있는 곳인데, 이렇게 새터민이 함께하는 봉사활동을 해주니 좋다”면서 “정기적으로 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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