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실록 등에서 보증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마니아다. 고종에게 처음으로 커피 맛을 알려준 이는 조선 황실 전례관이었던 마리 앙트와네트 손탁(1838∼1922)이다.

고종은 그녀에게 정동의 한옥 한 채를 하사했는데, 이후 그 집은 2층 양옥 건물로 업그레이드돼 손탁호텔로 거듭났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 젊은 윈스턴 처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묵기도 했던 손탁호텔에는 도성 제1호 커피숍이 있었다. 고종은 왕세자였던 순종과 자주 이 커피숍에서 만들어 온 커피를 덕수궁 정관헌에서 즐겼다. 손탁호텔은 이화학당에 매각됐다가 1922년에 철거됐다. 그 자리에는 이화학당 100주년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그 흔적을 표지석으로만 볼 수 있으나 고종이 좋아했던 커피 향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오는 27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봄 정동야행’을 통해서다. ‘역사를 품고 밤을 누비다’를 주제로 한 이번 정동야행은 서양 신문물의 도입지로서 1900년대 전후 정동의 모습을 재현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인다. 고종 때의 방식대로 커피콩을 절구에 갈아 커피를 만들고 ‘덜덜불 골목’을 체험할 수 있다. 덜덜불은 1901년 덕수궁에 설치한 백열전구를 지칭했는데 이를 밝히고자 들여놓은 발전기가 덜덜거리며 요란하게 돌아간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또 요즘 청소년들에겐 생소할 모스 부호로 전신을 주고받고, 과거 신문사에서 사용한 납 활자를 이용해 신문을 제작하고, 구한말 조폐공사 역할을 한 전환국에서 썼다는 압인기로 주화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아울러 정동 일대 29곳의 역사문화시설들이 뜻을 모아 오후 10시까지 시민들을 맞이한다. 옛 미국공사관 겸 영빈관이 있는 주한 미국대사관저와 19세기에 지어 근대적 건축미가 물씬 풍기는 영국대사관도 일부 개방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평소에는 열지 않는 성가수녀원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이렇게 정동야행에 참여한 시설을 방문하고 받아 온 스탬프가 7개 이상이면 정동 주변 음식점과 중구 내 호텔에서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으니 나만의 탐방 코스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지난해 첫 정동야행에서는 19만여 명이 색다른 정동의 밤 모습에 열광했다. 다가올 정동야행에선 정동의 어떤 모습에 흠뻑 빠질지 무척 궁금해진다.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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