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는 국회가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증인과 참고인을 불러 필요한 증언을 듣는 제도다. 대별하면 공직 대상자의 적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인사청문회와, 입법을 위해 해당 업역과 전문가의 견해를 듣는 입법청문회가 있다. 어느 경우든 ‘듣기 위한’ 제도다. 청문(聽聞)이나 ‘hearing’의 사전적 의미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한국 국회는 마치 의원들이 스스로 ‘주장하고 윽박지르기 위한’ 제도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청문회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원조 격인 미국이다. 1787년 헌법 제정 당시부터 실시해온 이래 청문회 없이 법안이 입법되는 사례가 없을 정도다. 하루 10회 이상 청문회가 열릴 정도로 횟수도 많다. 입법, 감독, 조사, 인준 청문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청문회 목적과 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철저히 정책질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꼭 필요한 증인만 채택해 정쟁으로 악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청문회는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 특위 활동기간이 무려 1년 4개월이었다. 80일 동안 진행된 청문회는 당시 미국 3대 방송사가 순번제로 전국에 생중계했다. 결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연결됐다. 미국의 상원정보위원회 조사청문회의 경우 수백만 달러 예산에 50∼70명의 인원을 지원받는다. 그중 상당수는 변호사다. 미 연방수사국(FBI) 등 관련 기관으로부터 조사관을 파견받기도 한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에선 해당 부처에서 장관들에게 기본적인 자료만 준비해줄 뿐 우리처럼 공무원들이 국회에 대기해 행정부 업무가 마비되는 일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또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청회(公聽會)라는 청문회 제도를 도입했다. 총예산과 극히 중요한 법안의 경우에만 열린다고 한다.
형식과 내용에서 다소 다르긴 하지만 조선 시대에도 청문회와 비슷한 추국(推鞫)이란 제도가 있었다.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왕이 직접 심문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의금부나 사헌부에서 행해졌다. 지금과 같은 청문회는 1988년 8월 도입해 그해 11월 5공 비리와 관련된 일해(日海) 청문회가 처음 열렸다.
‘상시 청문회’ 논란이 뜨겁다. 상시 청문회가 관철되든,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반대 경우로 가든, 중요한 것은 청문회의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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