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록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최근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인 야구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특히, 3명의 ‘호’(이대호·강정호·박병호)가 투수 부문이 아닌 공격 부문에서 세계적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 더욱 뿌듯하다. 사실 세계 스포츠계를 놀라게 한 것은 우리 여성들이 먼저였다. 외환위기 직후 박세리를 비롯해 이후 이른바 ‘박세리 키즈’라고 불리는 숱한 선수들이 미국 여자골프대회를 휩쓸고 있다. 우리 선수들의 활약으로 올해 열린 14개 대회에서 아시아계 선수들의 우승이 10여 차례나 된다고 한다. 한편, 가요계 싸이의 활약과 최근 소설계의 한강 등 전혀 몰랐던 인물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의 종(種)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백의·단일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위 인물들은 우리 이웃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체격 조건이나 상상력 차원에서 그 누구 못지않은, 세계에서 통하는 유전적 인자를 발현시킨 인물들이다. 어쩌면 우리 본연의 인종은 각국 교류와 외침을 겪으면서 국제결혼의 인자가 섞였을 것으로 본다. 숨어 있던 우리의 좋은 유전적 인자가 옛날 못 먹고 못살던 시기에는 짓눌려 있었다. 그러던 것이 소득 1만 달러를 넘고 계속 발전하는 과정에서 잠재적인 인자가 발현된 게 아닌가 상상해 본다. 이것이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세계 무대라는 완전경쟁의 장에서 먹히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한다. 관건은 새로운 토양, 경쟁이라는 제도로 압축된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세계적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체육·문화계를 뛰어넘는 분야에서도 종이 바뀔 수 없을지 생각해 본다.

진정, 우리나라가 종이 바뀐 시대에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부문이 정치(政治)와 교육(敎育)의 영역이다. 사실 이 두 분야는 국내적 성격이 강한 분야이기에 바뀌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토양은 바뀌었는데도 문제는 세계 경쟁에 노출되지 않는 분야다. 정치의 경우, 세계적인 코치를 수입(輸入)해서 쓸 수가 없다. 축구계의 고질인 ‘끼리’ 문화를 타파하는 데 거스 히딩크라는 걸출한 외국인 감독을 수입해서야 겨우 극복의 실마리를 찾게 됐고, 아직도 그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정치 영역에서는 정치인이 국내의 한 지방을 기반으로 성장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나타났지만, 지역구 관리에 능통한 인사들이 주로 당선됐다. 물론 해외 경험, 특히 선진 문물을 배운 인사를 뽑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도 한순간에 초심을 잊고 토호로 변해 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결국 우리 정치 지도자의 탄생을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국제 감각의 식견을 지닌 지도자 말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한때 그런 실험이 시도된 적이 있다. 이른바 노벨상 수상자를 초빙, 다른 교수들이 그들을 벤치마킹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 실험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교육의 영역은 각 개인이 하나의 기관으로서 고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고용자인 학교나 교육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더 근본적인 잘못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노벨상까지 탄 사람이 한국에 올 명분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올 만한 유인이 있어야 했다. 단 한 가지는 금전적인 보상일 텐데, 그것만으로는 좋은 학자를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이 분야에서도 국내의 걸출한 학자가 자생적으로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종은 계속 진화(進化)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인구의 약 4%에 해당하는 200만 명의 외국인과 같이 살고 있다. 농촌 지역에 가면 외국인 아내를 맞이한 가정이 많다. 그들의 자녀들이 그러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이들이 먼 훗날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원천이, 자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되새기면서 시대정신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냉철한 역사적·철학적 평가를 거쳐서 한국적인 국가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종이 바뀐 우리의 토양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한국적 철학의 정립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진정 진화한 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잘 꿰기만 하면 되는 많은 자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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