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스승 -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법정에 선 비행 청소년에게 판결을 내리며 단호하게 말하는 천종호(51·사진)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의 모습은 방송을 통해 제시된 자막과 함께 정지 화면 형태로 저장돼 많은 네티즌에게 공유됐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천종호 판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호통판사’ ‘안 돼 돌아가’가 뜰 정도다. 따끔하고 단호하게 혼을 내, 다시는 비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게 본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는 천 판사.

“이 아이들에게는 멘토를 한 명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나 역시 초등학교 5학년 ‘호통 담임’으로 불렸던 이정신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 길을 걷지 못했을 거예요.”

지난 18일 부산 연제구 법원로 부산가정법원 집무실에서 천 판사를 만났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초등학생 시절, 이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어마어마하게 훈련된 시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비석 마을’로 불리던 ‘달동네’ 부산 아미동에서 천 판사는 6·25전쟁 피란민들이 형성한 판자촌 단칸방에서 아홉 식구와 함께 살았다. 가난했기 때문에 준비물을 사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였고, 그럴 때마다 갖은 핑계로 결석했다. 그러던 천 판사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담임이었던 이 선생님은 대뜸 그에게 반장이라는 요직을 맡겼다. 하지만 반장이라고 봐 주는 것은 전혀 없었다. 학급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철저하게 반장에게 책임을 묻고 호통을 치셨다.

천 판사는 “그것 때문인지 책임감이 생겨 결석할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실제, 천 판사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결석을 밥 먹듯이 했는데, 5학년부터는 ‘진짜 두통’으로 딱 한 번 결석한 게 전부였다고 설명했다.

천 판사는 이 선생님에 대해 “정말 깨어 있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여름 방학 시작 전, 이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방학 숙제는 따로 내지 않을 테니 한 달 동안 너희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대신 한 달 후에 결과물을 보고 통과해야 인정해 준다”고 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그냥 실컷 놀았다. 한 달 후 결과물을 내야 할 때가 되자 아이들은 ‘거짓 보고’를 많이 했는데, 그 중 압권은 ‘권투를 배웠다’고 거짓말한 아이였다. 이 선생님은 교실 책상을 모두 다 뒤로 밀고는 “가장 싸움 잘하는 애랑 붙어서 이기면 인정해 준다”며 정말 싸움을 붙였다. 권투를 배웠다고 거짓말한 아이가 어쩌다 제대로 펀치를 날려 싸움 잘하는 아이가 코피가 나자 선생님은 호방하게 웃으며 “권투 배운 것 인정해 준다”고 하셨단다. 천 판사는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게끔 하는, 참된 주인 정신을 길러주셨던 분”이라며 “그래서 나 자신도 철이 많이 들게 됐고, 자신감과 자존감도 높아졌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5학년, 감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 이 선생님과 같은 멘토를 만나지 않았다면 성숙한 어른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천 판사는 확신했다. 사례를 직접 들었다.

“재판정에서 만난 아이 중에 예전에 교내 물로켓 대회에서 1등을 한 아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학교가 외부 대회에 다른 애를 대표로 내보냈습니다. 1등을 한 아이는 결손 가정 출신이었는데 그 이후로 이 아이는 과학을 공부하지 않았죠.”

천 판사는 “좋은 만남이 이어지면 건전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며 “이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멘토가 이 사회에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 =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
사진 =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교권 회복과 아동이 행복한 환경 조성을 위해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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