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 이영미 지음 / 푸른역사

‘신파’(新派)는 일제강점기 초부터 지금까지도 연극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지속해 쓰이는 말이다. 식민시대 우리 대중예술 초기에 일본에서 새로운 경향의 연극으로 유입된 신파는 어느 순간 과장된 연기와 과도한 최루적(催淚的) 비애 등 촌스럽고 저속한 대중문화의 경향을 지칭하게 됐다. 그럼에도 신파는 20세기 전반 인기의 중심에 있었고, 평가절하된 20세기 후반에도 대중적 인기가 완전히 시들진 않았다.

대중예술 연구에서 한발 앞서가는 저술활동을 해온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신파성’이라는 미감(美感)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신파성의 부침을 통해 이들 작품을 즐긴 한국의 대중이 근대·자본주의 사회를 만나 어느 정도 그 속성을 내면화하고 적응하며 살아왔는지를 읽어내는 유용한 틀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책은 신파성으로 본 한국대중예술의 사적(史的) 연구다.

저자가 앞선 연구들에 일부 기대서 다시 정리한 신파성의 미감은 세상의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질서 속에서, 마음으로는 상반된 윤리와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 질서에 저항하진 못한 채 스스로 굴복해 죄의식과 피해의식을 동시에 지니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을 과잉된 슬픔으로 드러내는 데서 생겨난다. 예컨대 신파극의 문을 열어젖힌 ‘장한몽’의 심순애는 대표적인 신파적 인물이다. 정혼한 이수일을 버리고 부자 김중배의 금강석 반지에 넘어가는 심순애는 윤리적 배신에 대한 죄의식과 함께 김중배의 돈에 대한 매혹이 오락가락한다. 부모가 김중배와 혼담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의사표명을 명확히 하지 않으며 이수일에게는 사랑을 재차 확인한다. 심순애가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를 갖고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면, 장한몽은 그 내용이 아무리 최루적으로 흘렀다 해도 신파는 아니다. 부(富)라는 근대적 욕망과 정혼과 부모의 뜻이라는 전근대적 윤리가 충돌하지만, 강한 힘에 매혹돼 자기 모멸로 파국을 맞는 심순애란 인물로 해서 장한몽은 신파적 작품의 전형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신파성은 자본주의적 근대가 본격화한 식민지 시대에 자리 잡은 근대적 미감이며, 시대 변화를 내면화하지 못한 대중의 세상을 대하는 분열적인 방식이었음을 장한몽은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1940년대 여러 예술 분야에서 절정을 이룬 신파성은 1950∼1960년대에 부침의 과정을 겪는다. 분단과 전쟁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기성 윤리나 가치관이 급격히 몰락했다. 미국 문화의 유입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빠르게 유포했고, 물적·육체적 욕망을 지닌 개인을 부각하는 경향이 대세로 자리 잡는다. 소설에서 필화사건까지 일으킨 정비석의 ‘자유부인’(1954·위 왼쪽 사진)은 단순히 댄스홀과 불륜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보다 등장인물들이 죄의식과 피해의식 없이 기본적인 욕구·욕망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근대세계와 더욱 일체감을 갖게 됐음을 보여준다.

1960년대 청춘영화에 이르면 돈을 벌고 계층 상승을 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죄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또 과거 억눌렀던 ‘가족’의 윤리적 억압도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리의 자식’인 두수와 외교관의 딸인 요안나의 사랑을 그린 ‘맨발의 청춘’(위 오른쪽)은 신분 상승과 부에 대한 죄의식의 청산을 보여주며 둘이 죄의식 없이 행복한 죽음을 맞는 것도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으로 해석된다. 1960년대 초반 자본주의에 대한 낙관성에 기반을 둔 이 같은 탈(脫)신파성은 후반으로 가 박정희 정권 민정 2기에 다시 부활한다. 대중은 꿈꾸던 계층 상승의 길에서 밀려나면서 가난하고 약한 존재들의 미감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무려 6편의 속편이 나올 만큼 히트를 한 ‘미워도 다시 한번’은 약자인 미혼모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고통을 전면화함으로써 신파적 미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다.

1970∼1980년대 대중예술은 자신의 불행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 생각하는 신파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불행이 폭압적인 세상 혹은 자신보다 강한 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청년문화의 대두는 이제 신파적 미감이 설 자리를 크게 줄어들게 한다. 이미 대중은 자본주의적인 세상이 오로지 욕망과 힘으로 경쟁하는 곳이며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만, 집단적으로 힘을 키워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고 그것이 역사의 순리라 여겼던 젊은이들 사이에 신파성은 다시 생겨난다. 그 방법은 단기적으로는 일신의 기초적인 욕구·욕망을 포기해야 하는 이율배반이며 다시 신파성이 만들어지는 근거가 됐다.

2000년대 이후 신파성은 소멸한 것일까. 저자는 이전 시대처럼 중요한 미감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 부분적으로 곳곳에 잔존해 있다고 본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상황에서 서민 대중이 겪는 무한경쟁과 양극화, 이로 인한 타인에 대한 폭력성의 증가 등은 신파성의 남은 불씨를 지속시키고 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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