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日帝) 최후의 날인 1945년 8월 14일… 그날도 일제가 이 땅에서 변호사시험을 치른 사실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날 민법, 형법, 상법 세 과목만 치르고 이튿날 해방으로 중단됐다. 한홍구 저 ‘사법부’(돌베개·2016.3.21)는 해방 공간의 ‘웃지 못할 일’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 “일본인들이 관련 서류를 모두 불태워버렸는데, 응시자들은 집단으로 전원 합격을 요구했다. 응시자 200명 중 남쪽에 있어 연락이 된 106명이 변호사시험 합격증서를 교부 받고 판검사로 임명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두어 세대 흐른 지금 변시도 ‘묻지마 성적’이 산뜻이 정리되진 않고 있다. 변시법 제18조 1항 본문 ‘시험의 성적은 시험에 응시한 사람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아니한다’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6월 25일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로 실효시켜 정부가 지난해 11월 5일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여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헛돌았기 때문이다. 헌재의 과잉금지 법리를 받들어 정부 개정안은 제18조의 표제를 ‘시험정보의 비공개’에서 ‘시험정보의 공개’로 완전히 바꿨다. 그 개정안도 29일 제19대 국회의 폐문과 함께 폐기된다. 제20대 누군가의 부활 손길 기다려야 한다.
변시법은 또 부칙 제4조에서 ‘사법시험과의 병행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앞서 부칙 제2조가 ‘사시 폐지’를 못 박은 데 따른 경과규정으로, 내년까진 변시와 별도로 사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개정안을 제출한 그날, 조경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똑같은 이름의 개정안은 변시 성적 공개 기간을 늘리는 한편, ‘사시 폐지’ 부칙 자체를 폐지해 변시-사시의 병존을 제도화하는 대안이다. 그 개정안도 법사위를 공전해왔고, 누군가 나서 복사하다시피 할 것이다.
변시법 개정안이 대를 넘겨 표류하면서 조용호 재판관의 지난해 6·25 법정의견 보충의견도 여전히 메아리로 돌고 있다. 조 재판관은 법조인 배출 제도를 사시-사법연수원 체제 및 로스쿨-변시 체제로 나눠 각각을 ‘학벌이나 집안, 배경, 인맥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른 역전 기회 보장’과 ‘평가기준의 객관성 및 채용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로 대비했다. 변시 성적 비공개에 대한 질책만은 아닐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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