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 정치부장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그런데 30일 임기가 시작된 제20대 국회는 그 반대로 싹수가 노랗다. 출발도 하기 전 불거진 상시 청문회법 파동은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단의 ‘협치’ 약속을 안 한만 못한 것으로 만들었다. 여당은 임기 첫날 야당이 한사코 반대하던 노동개혁 4법 등 쟁점 법안을 수정 없이 당론으로 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여권이 손사래를 치는 세월호특별법 등으로 맞불을 놓은 데 이어 정치적 휘발성이 강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금지법 등을 추가로 내놓을 방침이다.

국정 현안은 산 넘어 산이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은 남은 임기 1년 9개월 동안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한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대법관 5명 등 8명의 후임을 지명해야 한다. 사법계의 보수화를 비판해 온 야당은 여소야대 정국을 활용해 대통령의 후보 지명을 최대한 압박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렇다고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적당히 국정을 운영하기에는 당면한 국가적 위기의 뿌리가 너무 깊다. 정치, 외교·안보,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 우리 사회는 이미 한계 상황에 처해 있고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정치권은 역대 최악이라는 19대 국회의 연장으로 가고 있다.

이윤 추구가 본질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논리를 무시한 가격 인하나 호의는 경제질서의 혼란을 가져와 결국 사회 구성원에게 피해를 준다. 마찬가지로 권력 추구가 본질인 정치권에서 도덕적 잣대나 민심의 요구만으로 정치인들이 공정하고 생산적인 행동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권력 경쟁을 생산적인 정치로 연결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방안이다. 현재 제1·2당은 지도부 공백 상황에 처해 있다. 국민의당 역시 ‘안철수당’으로 불리지만 다른 상당수 구성원이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갖고 있다. 더구나 20대 총선 민심은 당론 중심으로 국정 현안을 풀어가던 기존의 틀과 방식에서 탈피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차기 대통령 후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야 중진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됐다. 자신의 지지세력을 규합해 조직을 만들거나 권력 투쟁에 나서라는 얘기가 아니다. 국정 현안들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문제 해결에 앞장섬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비전, 역량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자연히 국민은 후보군(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게 된다. 결국 ‘국민 중심의 정치’로 이어지면서 당리당략에 얽매인 여야 간의 비합리적이고 습관적인 대립이 사라진다. 정책을 중심으로 한 연대와 협치도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다. 실제로 여당 내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선 후보가, 야당 내에서 노동개혁 4법에 찬성하는 후보가 등장할 수 있다. 책임정치, 정당정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또 대권 경쟁의 조기 과열이나 현 정부의 레임덕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현상은 이미 시작됐고, 막겠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정당 구조하에서는 더욱 왜곡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큰 만큼 발전적으로 표출되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이런 식으로 민심잡기 경쟁에 나선다면 우리 정치는 질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사실상 대선 오픈프라이머리가 이뤄져 대선 후보 경선과 본선의 형식·수준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당선된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이나 공약에 대한 책임에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는 진정성을 보여주게 된다.

여야의 무한대립,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행사, 선진국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선거운동의 과잉 규제, 기존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 등은 우리 정치체제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20대 국회에 이를 혁신할 헌법과 선거법의 개정을 기대할 수 없다. 20대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이미 여든 야든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되면서 외부의 도전을 막을 철옹성을 스스로 무너뜨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기 대선 후보가 국정 현안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행위는 경쟁을 넘어 우리 정치의 혁신운동이 된다. 세상이 바뀌고 민심이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지역 연고를 따지고 집토끼-산토끼를 구분하는 정치공학에 빠진 후보는 결코 차기 대선에서 승리해선 안 되고, 승리할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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