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삶이 그리 안전한 것 같지 않다. 점점 더 위험해지고 살벌해진다는 느낌? ‘헬조선’, 과민반응 아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이천 냉동창고 화재, 우면산 산사태, 불산·염산 누출 사고, 위험 외주화에 따른 각종 산업재해와 사고, 사고… 목록이 길다. 끊이지 않는 개인 정보 대량 유출 사고로 뒷목이 서늘한데,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 세월호 참사는 이 길고 긴 목록의 완결판인 줄 알았지만, 그보다 더 앞서 안방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메르스로 사회 전체가 얼이 빠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카바이러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황사와 오존으로 하루하루가 괴로운데 요즈음은 아동학대·살해, 혐오범죄와 정신질환자의 ‘묻지 마’ 범죄로 악성·특별 위험사회를 넘어 공포사회가 돼 가고 있다.
왜 한국 사회는 점점 위험·살벌해지는 걸까. 결국, 정부가 문제라는 식으로 원인을 단순화·일반화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이 매우 나쁘다는 사실과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정부의 존재 이유, 그 최소·최저한은 주인(master)인 국민의 생명과 자유, 안전한 삶을 지켜주는 일이다. 이 일을 제대로 못 하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지금은 정부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범하고 억압하기보다는 그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들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국가가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해 내전 등 혼란에 빠진 아프리카 나라들의 경우 국가성(stateness)이 문제였다면, 우리의 문제는 국가 부재(statelessness)에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방비로 침해돼도 국가는 부재중,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문제라며 뒷짐 지고 모른 체하다가 여론이 악화하면 그제야 허둥지둥 대책을 만들고 관계자 처벌에 나서는 모습, 막장 드라마만큼 익숙한 정부의 상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른바 4대 악(惡) 근절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가정폭력·성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이렇게 네 가지 사회악을 근절하겠다고 했을 때 무슨 얘긴가 의아스럽게 여긴 사람들도 있었지만, 직접 체감효과를 노린 공약이어서 나중에 육안으로 성과를 검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위험인자들이 이미 4대 악 수준을 훨씬 넘어버린 현실이었지만, 그나마 4대 악이라도 근절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공약은 과연 실현됐는가. 그동안 한국은 얼마나 안전해졌고, 우리는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는가. 적어도 4대 악 근절만이라도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대통령의 진솔한 경과보고를 원한다. 집권 4년 차에 과연 사람들의 삶이 전보다 더 안전해졌는지, 오히려 더욱더 위태로워지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
근절하겠다던 4대 악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는데, 이를테면 생각하기조차 가슴 아픈, 어린 학생들을 희생시킨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수습됐고 그 결과 무엇을 어떻게 개선했으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우리는 보고를 받은 바 없다. 이대로라면 메르스 사태로 많은 귀한 목숨을 잃고 사회 전체가 충격을 받았는데도 그 원인과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어떻게 대했으면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피해구제는커녕 원인 규명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했을까.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 마’ 살인이라는 경찰의 해명에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이 피해자 추모를 넘어 여성혐오범죄에 대한 반발, 약자에 대한 범죄 전체에 대한 사회적 항의로 번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단지 대중의 지나친 공포와 피해의식의 정서적 감염 현상과 그로 인한 ‘범죄의 오해’ 탓일까. 당국이 불순한 두려움의 ‘정서적 전염’ 현상이라는 잘못된 진단으로 일을 그르쳤던 건 이번만이 아니다. 촛불시위 때도 그랬다. 여자라면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할 수 있었으리라는 위험의 공감대가 괜히 생겼을까.
4대 악을 근절한다 했으니 남은 기간만이라도, ‘국민안전처’를 ‘호민처(護民處)’로 바꾸고 국무총리를 호민관으로 임명하든지 해서라도, 폭력·범죄와 유해물질, 최악의 대기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디 제대로 된 국민보호 역량을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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