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짜리’ 퍼트 실수 탓에 인생이 뒤바뀐 남자가 있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통산 12승과 상금왕 2회, 4년 연속 덕춘상(최저타수상) 수상, 아시안투어 6승과 상금왕 2회 수상에 빛나는 강욱순(50) 프로다.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주름잡았던 남자골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지난달 30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시화공단 내 복합체육시설인 안산스포츠파크 공사 현장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시화호에서 불어오는 바람, 굴착기 소음, 덤프트럭이 오가며 뿌리는 흙먼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의 직함은 ‘강욱순 스포츠㈜ ’대표이사다. 자신이 꿈꿔 온 ‘원스톱 골프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그동안 모은 사재를 털어 설립한 회사였다. 7만7249㎡(2만3358평) 부지에 230여 억 원을 들여 골프 연습 레인지(3층 120타석)와 9홀 파3 코스, 어프로치 샷 전용 연습 타석, 25m 레인 5개를 갖춘 수영장, 호텔식 사우나, 피트니스장,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족구장 등 다양한 생활체육 및 레저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강 대표이사는 한국 골프의 미래를 위해 지난 9년 동안 이 사업을 끈질기게 추진했고, 2009년 사업자 선정에선 10개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 사업권을 따냈다. 지난해 10월 착공해 현재 공사진척도는 40%를 넘겼다. 올 연말이면 완공된다. 시험 운영을 거쳐 내년 3월 정식으로 문을 연다.
골프 선수로 살아온 그가 그동안 어렵게 벌어들인 상금을 쏟아붓는 등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가로 변신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사업 계획은 가장 믿었던 아내에게 먼저 퇴짜를 맞았다. 아내는 “골프를 해서 성공적인 프로골퍼 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느냐”며 거세게 반대했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도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남편의 변하지 않는 ‘신념’을 확인한 그의 아내는 이젠 공사 현장에 함께 출근하며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됐다.
강 대표이사가 평생 꿈꿔 온 사업이 생각보다 빠르게 확실히 진행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2003년 말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퀄리파잉(Q) 스쿨에 응시했다. ‘지옥의 6라운드’ 마지막 날, 마지막 홀에서 30㎝ 파 퍼팅을 실수하는 바람에 1타 차로 낙방했다. 골프 인생에서 가장 아쉽고 후회가 남는 실수였고, 단 한 번의 퍼팅이 운명을 갈랐다. 최경주에 이어 PGA투어의 ‘2호 한국 선수’가 될 뻔했던 그는 편안한 한국 대신 미국에서의 고단한 2부 투어 생활을 선택했다.
9·11테러가 발생한 직후여서 대회 이동을 위해 공항에 갈 때마다 검색대를 통과하는 게 ‘컷 통과’ 못지않은 큰일이었다. 이렇게 7개월간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사서 고생을 한 이유는 있다. 은퇴 후 후배를 가르치는 골프아카데미를 차리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지니고 있던 그는 미국의 골프아카데미 운영 방식 덕분에 ‘눈’을 떴다. 강 대표이사는 “미국의 매뉴얼화된 시스템에선 각자 다른 스윙을 한다. 그러나 선수의 장점을 더욱 강화한다. 우리나라 주니어 선수들이 ‘붕어빵’처럼 똑같은 스윙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처럼 과학적이지 못한 연습 방법으로 인해 40∼50대까지 롱런하는 골퍼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이사가 추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원스톱 골프아카데미’. 스윙을 배우려면 연습장에, 체력 운동을 위해선 헬스클럽에 가야 한다. 또 멘털 강화를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식사를 위해서도 이동한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고, 하루 종일 걸리던 것을 반나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원스톱 골프아카데미다. 나머지 반나절은 취미생활에 투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교육 프로그램(매뉴얼)을 만들고, 개인별·수준별로 나누어 단점을 보완하는 시스템이다.
강 대표이사는 홀인원을 통산 7차례 경험했다. 18홀 베스트 스코어는 공식 대회에선 9언더파 63타. 비공식 대회에서는 11언더파까지 쳐 봤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연장 ‘7번째 홀’까지 가는 접전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첫 대결은 SK텔레콤오픈으로 위창수에게 7번째 홀에서 졌고, KPGA선수권대회에선 신용진에게 7번째 홀에서 이겼다. 두 차례 모두 연장전만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피를 말리는 사투였다.
골프 선수로만 살아온 강 대표이사는 “골프는 자신과의 약속”이라며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야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3년간 ‘명상’을 배웠다는 강 대표이사는 선수 생활의 활력을 찾은 비결을 공개했다. 그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명상이 최고의 훈련”이라면서도 “명상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면 승부욕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지만 비즈니스에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 대표이사는 또 “사업을 하다 보니 상대를 잘 파악하는 것도 일인데 배려한다는 게 오히려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늘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이사는 지난해까지 후배들과 KPGA투어에 출전하며 ‘영원한 현역’을 자처해왔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한때 은퇴 결심도 했다. 하지만 공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어 최근 목표를 수정했다. 강 대표이사는 “출근하면 5∼6시간씩 회의를 하다 보니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져 골프 할 때는 없었던 허리 병이 생겼다”며 “시니어투어에 몇 차례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는 “새로운 골프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기에 이젠 공사장에 퍼지는 굴착기 소음마저 내 꿈이 이뤄지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안산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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