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영남권의 신(新)공항 입지 발표일이 가까워 오면서 두 지역이 벌이는 맞대결이 점입가경이다. 정치 쟁점으로 비화했던 5년 전 상황의 반복이다. 당시 두 후보지는 모두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업성이 뒷전인 지역 간의 갈등이 씁쓸하다. 신공항은 성공이 보장되는 올림픽 유치 경쟁이 아니다. 공항이 성공하기까지는 불확실성이 크다. 지어만 놓으면 손님이 몰려오는 사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객이든 화물이든 국제선을 타고 오가는 시장 수요가 충분해야 한다. 최근까지 국내공항들의 건설은 모두 중단됐거나 실패했다. 14개 국내공항 가운데 김포와 제주, 김해 세 곳을 제외하곤 모두 적자운영 중이다. KTX의 완전 개통 후로는 그나마 유지되던 항공편마저 계속 줄고 있다. 2004년 감사원은 당시 건설 중이던 김제와 울진, 무안공항의 중단을 권고했다. 그러나 김제를 빼곤 지역의 선거공약으로 모두 밀어붙였다. 지금 양양공항과 무안공항은 개항 때부터 정기편이 없어 여전히 개점 휴업 상태다. 울진공항은 아예 개항도 못 했다. 모두 정치적 배경으로 추진돼 실패한 국책사업들이다.

급증하는 여객 수요로 영남권역에 대규모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수요 예측 결과들은 정말 믿을 만한가. 정치 논리가 지배하는 국책사업을 보면서 심각한 우려가 든다. 국토교통부는 2014년 수억 원을 들인 용역을 통해 영남권역에 충분한 수요가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적정 후보지를 결정하기 위해 20억 원을 들여 프랑스의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에 용역을 맡겼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는 공항 건설을 전문으로 하는 엔지니어링 회사다. 영남권역의 중장기 수요가 충분하므로 한 지역을 선정한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다. 바로 여기에 수요 예측의 왜곡 가능성이 있다.

새로 건설하려는 공항은 과연 예측했던 영남권역 수요를 모두 흡수할 수 있을까? 신공항이 건설되면 현재의 울산·포항·사천·김해·대구 지역의 공항들은 폐쇄할 수 있을까? 영남 지역민들은 서너 시간이면 도착해 글로벌 노선에 탑승하는 인천공항을 포기하고 신공항을 이용할 것인가? 광대권역의 수요를 신공항이 흡수하는 가정 아래 여객 수요를 판단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낙관이다.

신공항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배후도시의 여객을 흡수할 만큼 다양한 글로벌 노선도 구축돼 있어야 한다. 일단 입지가 결정되면 평균 10년이 걸리는 토목과 건설 기간에 해당 지역에서는 뉴딜정책의 달콤한 경제적 효과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노선을 취항하는 항공사들의 중장거리 노선이 집중되지 않는다면, 주인 없는 공기업의 부실화는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돌려지게 된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은 출발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공항 건설은 2002년 중국 민항기의 착륙 사고를 계기로 김해공항의 안전성 문제로 시작됐다. 그리고 대선 때마다 지역의 단골 공약이 되면서 정치적 논리에 휘둘려 왔다. 공항의 수용 능력이 부족하다면 이를 확충하는 방안을 찾고, 안전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면 된다. 활주로를 매립해 수용력 확충에 성공한 홍콩의 첵랍콕 공항, 활주로 방향을 수정해 안전성을 강화한 서울공항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밀양과 가덕도 유치 경쟁에서는 정치적 논리부터 배제해야 한다. 사활을 건 지역 대결의 프레임만 벗어나면, 제3의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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