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초록이 울창한 6월이면 산과 들에 갓 여문 먹거리가 고개를 내민다. 내 고향 경남 남해에도 이맘때면 앵두, 산딸기, 오디 등이 아롱다롱 열린다. 또 이때 먹던 간식이 어머니가 밭에서 캐다 찐 포슬포슬 팍신팍신한 감자다. 하우스 재배가 발달해 지금은 사철 흔하지만 표면의 흙이 채 마르지 않은 말갛고 얇은 껍질의 제철 감자 맛은 매우 각별하다. 워낙 싱싱해 삶거나 찌기만 해도 특유의 맛과 향이 좋다.
보통 24절기 중 해가 가장 높은 하지 무렵에 수확하기 때문에 ‘하지감자’라고도 부른다. 올해 하지는 6월 21일이다.
감자는 참 고마운 작물이다. 비옥한 토양이 아닌 산간지방이나 황무지, 서늘한 기온에서도 잘 자란다. 재배기간도 짧다. 봄이 오기 전, 늦어도 3월 안에 파종한 감자는 120일 정도 지나면 수확한다. 한 알의 씨감자로 얻는 양도 상당하다. 예로부터 유럽에서는 밀 수확량이 부족할 때 식량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보릿고개마다 가난한 이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줬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감자는 80% 정도가 ‘수미감자’다. 재배와 보관이 수월하고 단맛과 고소한 맛이 뛰어난 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는 ‘남작감자’로 주로 남쪽 지방에서 이른 가을에 심어 초겨울에 수확한다. 이 외에 대서감자, 자주감자, 붉은감자 등 여러 품종이 소량씩 재배되고 있다.
감자를 ‘밭의 사과’라 칭하기도 하는데 프랑스어로는 ‘폼드테르(pomme de terre)’다. 사과를 뜻하는 ‘폼(pomme)’과 땅을 이르는 ‘테르(terre)’의 합성어다. 실제로 감자는 사과처럼 둥그런 모양에 식감이 아삭하고 영양소가 풍부하다. 감자에는 비타민 C가 많고 열에 의한 손실도 다른 채소에 비해 적다. 칼륨도 다량 함유해 체내 소금기를 배출해 주기 때문에 몸이 자주 붓거나 혈압이 높은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고향의 아버지도 혈압이 높아 틈틈이 감자를 많이 드시라고 권하고 있다.
며칠 전 부모님 댁에 갔더니 감자밭이 여물어 가고 있었다. 수확하려면 아직 1∼2주 기다려야 하지만 갓 캔 감자로 맛있는 음식을 한번 해드리고 싶었다. 그때 떠올린 메뉴가 강원도 토속음식인 감자옹심이다. 남해에서는 감자옹심이를 해 먹지 않는다. 감자는 주로 찌거나 국, 찌개, 볶음, 전 등으로 먹는다. 그래서 이날은 어머니 음식이 먹고 싶어 들어가지 않던 고향집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감자밭에 나가 아랫잎이 누렇게 마르기 시작한 포기를 골랐다. 그 아래 흙을 조심스레 걷어 가장 굵은 것을 몇 개 딴 뒤 다시 흙으로 잘 덮어 두면 남아 있는 덜 자란 것들도 문제없이 여문다.
진하게 우린 조개국물에 동글동글 반죽한 감자옹심이를 넣어 끓인 뒤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20년 넘게 음식을 하고 있는데, 나를 가장 긴장시키는 품평단은 가족이다. 한 수저 뜨는 어머니 표정을 바라보는 순간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것참 개운한 국물에 쫄깃한 옹심이가 꽤 맛있다. 별미 중에 별미다.” 행복은 늘 소소한 데 있다더니 어머니 칭찬 한마디에 세상을 얻은 듯 행복했다. 아이들도 잘 먹으며 “서울에 가서 또 해주세요” 하고…. 식사를 마친 어머니는 감자밭에 나가 아랫잎이 노란 포기마다 흙을 들춰 알이 굵은 감자를 모아 내 차에 실으신다. 손수 농사지은 감자로 손자들 자주 만들어 먹이라는 어머니의 배려에 마음 한쪽이 따듯해진다.
밭과 논을 갈고, 포트에 키운 모종을 옮겨 심고, 매일 물을 대고 잡초를 뽑아야 하는 농번기가 시작됐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농사를 짓다 보니 새벽 일찍부터 한낮의 뙤약볕 아래서도 허리 한번 펴기 힘든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작물들의 이런 성장배경은 매일 아침 재료를 대할 때, 그리고 조리법을 연구할 때 내 마음가짐의 기초가 된다.
한식당 다담 총괄·사찰음식 명인
어떻게 만드나
재료(2인분 기준)
감자 3개, 소금 약간, 참기름, 애느타리버섯 한 줌, 애호박 1/8개, 청고추 1/3개, 홍고추 1/3개, 대파 1/4개, 간마늘 1/4작은술, 조개육수 재료(물 8컵, 말린표고 1개, 모시조개 400g, 다시마 5×5㎝ 1장)
만드는 법
1 감자는 강판에 간 다음 면보에 싸서 물기를 꼭 짠다. 이때 감자에서 나온 물은 따로 모아 전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10분간 놔둔다.
2 볼에 1의 물기 짠 감자를 담는다. 감자 물의 윗물은 버리고 아래 가라앉은 전분을 담는다. 소금, 참기름 1/2작은술을 넣어 치댄 후 지름 1.5㎝ 크기로 동그랗게 완자를 빚는다.
3 냄비에 모시조개를 뺀 나머지 조개육수 재료를 모두 넣고 센 불에 올린다. 육수가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줄이고 3∼4분간 끓인 다음 다시마를 건져낸 후 모시조개를 넣고 약 3분간 더 끓인다. 모시조개의 양이 많으므로 불을 끈 다음 조개의 절반 이상은 알맹이만 남기고 껍데기는 빼낸다. 이때 표고버섯도 꺼낸다.
4 3에서 건진 다시마와 표고버섯은 0.3㎝ 크기로 채 썬다. 애느타리버섯은 뚝뚝 떼어 놓고 애호박, 청고추, 홍고추도 0.3㎝ 크기로 채 썬다.
5 3의 조개육수를 센 불에 올려 팔팔 끓어 오르면 2의 완자와 간마늘을 넣는다. 완자가 떠오르면 4의 채소와 다시마를 넣고 1분간 더 끓인다. 필요시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조리 Tip
1 햇감자는 신문지나 종이상자에 펼쳐 놓고 그늘에서 껍질의 젖은 흙을 충분히 말린 다음 구멍 뚫린 종이봉투나 상자에 담아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비닐에 담아 보관하면 쉽게 상하고 냉장고에 보관하면 감자의 전분이 당질로 바뀌는데, 이 감자를 기름에 조리하면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 자칫하면 싹이 나고 껍질 밑이 초록색으로 변하는데, 감자 싹과 초록색 부분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성이 있으므로 꼭 껍질과 싹을 충분히 잘라 내고 먹는다. 감자를 보관하는 상자에 사과 한두 개를 함께 넣으면 사과에서 에틸렌이라는 가스가 나와 싹이 나는 것을 예방해 준다. 반면 감자와 양파는 따로 보관한다. 함께 두면 둘 다 쉽게 무른다.
3 바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껍질을 벗긴 감자가 남았다면 찬물에 잠시 담갔다가 물기를 닦은 다음 랩에 싸서 냉장 보관한다.
4 감자옹심이탕의 국물은 다시마와 조개에서 나온 염도로 간이 충분하다. 마지막에 소금은 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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