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문학관 · 어울샘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들에 더 무심할 때가 있다.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해서다. ‘김종대의 동네 집 이야기’와 ‘우리 마을 문화재’는 그동안 우리 곁에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한 ‘발견’의 이야기다. 김종대 디자인연구소 이선(利善) 대표는 ‘문전성시’라는 프로젝트로 전통 시장을 되살린 서민들의 건축가다. ‘1억원대 집짓기’의 비결까지 소개해 공감을 샀다. 김 대표가 특유의 심미안으로 우리 주변의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의 눈을 따라가다 보면 건축물에 담긴 의미를 새삼 되새길 수 있다. 김 대표의 시선이 현대 건축물을 향한다면, ‘우리 마을 문화재’는 옛것의 발견이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유산을 찾아가 그곳에 얽힌 사연을 알아보고, 현재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옛것에는 조상의 얼이 서려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미덕을 배울 수 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방문해봐도 좋을 듯하다.

상수도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 산동네 집들은 수도꼭지에서 졸졸 흐르는 물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머리라도 감을 양이면 미리 물을 받아 놓아야 맘 놓고 쓰지 비누칠부터 했다가는 머리를 헹구기는커녕 비싼 수돗물 헤프게 쓴다고 어른들로부터 혼이 나기 일쑤였다. 물 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수원지에서 공급하는 수도의 압력이 낮아서인데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가압장이다. 가압장은 공장이나 창고 같은 모습으로 지하에 가압펌프를 둔 큰 공간에서 물을 멀리까지 보내는 역할을 했다. 한때는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중요한 시설이었지만 수도 사정이 좋아지면서 가압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됐고 기피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그런 가압장이 멋진 아이디어를 만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는데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위쪽 사진)과 금천구 탑골로의 어울샘(아래쪽)이 바로 그런 곳이다.

청운공원 입구에 위치한 청운 가압장은 높은 산에 건설된 청운 아파트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1974년에 설치됐다. 하지만 청운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그 기능을 잃었고 청운 아파트가 철거된 자리는 공원이 됐다. 성곽을 배경으로 서울의 중심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이 공원에 윤동주 언덕을 조성하면서 가압장을 운동주문학관으로 임시 사용하며 재건축을 추진 중이었다. 2011년 폭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를 계기로 가압장의 구조안전진단을 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경사진 언덕에 숨어있던 2개의 물탱크를 발견하게 됐고 숨겨진 물탱크의 발견은 지금의 윤동주문학관을 있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새로 발견된 물탱크는 옛 모습을 유지하면서 윤동주의 문학세계를 잘 보여주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물탱크 지붕을 걷어낸 제2전시실을 열린 우물이라고 부르는데 열린 우물 안에서 보는 사각형 하늘과 모서리를 살짝 가린 나뭇가지가 시적인 낭만을 더해준다. 반면에 닫힌 우물이라 불리는 제3전시실은 윤동주가 갇혀 있던 감옥을 연상하게 하는 텅 빈 어두움과 어쩌면 감옥 안에서 꿈꿨을 자유를 상징하는 작은 빛줄기를 만나게 된다. 두 개의 공간은 각각 다른 빛의 양과 질을 활용한 극적인 변화로 관람객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제1전시실을 시작으로 실내에서 실외로, 다시 실내로 연결되는 매끄러운 동선과 스토리텔링 기법의 적극적인 도입은 짧은 시간 안에 윤동주의 문학세계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치가 됐다.


윤동주문학관이 전문가들의 협동작품이라면 금천구의 어울샘은 주민들의 합작품이다. 하늘이 좁아 보일 정도로 빼곡한 다세대 주택들 사이에 있는 시흥 가압장은 2012년에 서울시가 지원하는 마을창작소 유치를 계기로 주민공동체 공간으로의 변신을 꾀했는데 주민들은 초기부터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고 스스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폐가압장에서 작은 이벤트를 열어 자유롭게 대화하고 즐기면서 의견을 구체화했고 이렇게 모인 주민들의 희망을 담아 금천 예술창작소인 어울샘이 탄생하게 됐다.

어울샘은 지하의 습기와 환기문제를 해결하고 공간을 수직으로 연결하기 위해 중심부에 열린 공간을 두었는데 이 공간을 통해 지하 활동공간과 1층 공동부엌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이곳을 처음 찾은 사람들이 새로운 공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쉽게 친해질 수 있다. 또한 건물 출입구는 접어서 열 수 있는 접이문으로 수용할 행사의 성격과 규모에 맞게 공간 확장이 가능하다. 밤하늘을 보며 작은 이벤트를 나누는 옥상정원은 어울샘의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지만 어울샘의 진짜 매력은 자원봉사 학생들과 자발적으로 문화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에게서 나온다.

한때는 꼭 필요한 공간이었지만 더 이상 쓸모없어 폐기된 가압장이 하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족시인의 정신을 담아내는 곳으로, 다른 하나는 주민들의 공동체 삶의 중심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몇 년 되지 않은 건물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부수고 다시 짓기를 대수롭지 않게 반복하는 우리 사회에서 물 대신 문화를 퍼 올리는 가압장의 변신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사진 =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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