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도동 ‘양녕대군 묘역’

양녕대군은 조선 세종의 큰형이다. 1394년 태종 이방원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며, 부인은 광산 김씨(김한로의 딸)다. 이제는 그의 이름이다. 10세 때이던 1404년 세자로 책봉됐으나 자유분방하고 방탕한 생활 때문에 폐위됐다.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세종)이 세자로 책봉된 후 경기 광주로 물러나 살다가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전국을 유랑하며 풍류를 즐겼다. 시, 서예, 음악 등에 조예가 깊었다. 동생 세종과는 우애가 지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묘역은 약 3만9000㎡ 부지에 펼쳐져 있다. ‘지덕사(至德祠)’라는 사당과 서고(書庫), 제기고(祭器庫) 등 3동의 건물과 사당 뒤에 있는 묘 1기로 구성돼 있다. 사당에는 세조가 직접 만든 금자현액(金字懸額)과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알려진 숭례문(崇禮門) 탁본 등이 보관돼 있다.

묘는 양녕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를 합장한 것이다. 그 앞에 묘비 및 문인석이 서 있다. 7대손 만과 8대손 성항이 묘소 앞에 석물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때 세운 묘비는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전날인 8월 28일 밤 난데없이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하며, 1915년 다시 묘비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덕’이란 이름은 ‘논어’ 태백편(太白篇)의 ‘태백은 지덕’이라는 공자의 고사에서 유래됐다. 이 고사는 고대 중국 주나라 태왕 때의 일이다. 태왕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태왕은 내심 셋째인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다. 첫째인 태백과 둘째 우중이 왕의 뜻을 알아차리고 삭발하고 은거하는 등 왕위를 사양해 동생 계력이 왕위를 잇도록 했다. 후일 공자는 이를 두고 태백은 지덕, 우중은 청권(淸權)이라고 칭송했다. 이 고사를 바탕으로 양녕대군의 사당을 지덕사,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사당을 청권사로 명명했다.

묘역은 문화재여서 평소엔 출입이 제한된다. 묘역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동작구청이나 양녕대군 종중(02-826-3848)에 미리 연락해야 한다. 아니면 동작구청과 양녕대군 종중이 함께 정기적으로 운영 중인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동작구청은 ‘600년 종가 지극한 덕 안에 빛을 감추다’를 주제로 4∼11월까지 한 달에 2회(격주 토요일)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종손에게 듣는 종가 이야기, 종가 음식 체험 등이 열렸다. 이달 18일에는 ‘규방공예-전통매듭 만들기’가 이어진다. 7월 종가의 제례, 8월 외국인 대상 프로그램도 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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