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

종종 가보지 못한 나라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40년 외교관 생활에다 외교장관이 된 이후 매년 지구를 몇 바퀴씩 돌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못 가본 나라가 꽤 있다. 우리와 외교 관계가 없는 쿠바도 그중 하나였다.

지난 4∼5일 대한민국 외교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쿠바를 방문했다. 중미·카리브 지역 25개국으로 구성된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 옵서버 참석 초청에 따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6·3 한·불 정상회담과 국빈만찬 일정이 끝나자마자 쿠바로 이동, 6·4 회의 후반부터 참석했다. 정상(頂上)의 프랑스 방문 마지막 일정을 일부 빠지면서 이 회의에 참석한 것은 그만큼 이번 쿠바 방문이 갖는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쿠바·미국 간 국교 재수립 이후 쿠바 정부가 주최한 최초의 정상급 다자회의였다. 쿠바 정부는 이번 회의 성공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이번에 주최 측이 옵서버 국가 대표인 필자의 발언문을 유일하게 정상회의장에서 ACS 문서로 공식 회람하고, 사실상 정상에 준하는 의전과 경호를 제공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정부는 중남미 지역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통령의 지난해 남미 4개국 순방과 올해 4월 멕시코 방문에 이어, 내년에는 우리가 36개국으로 구성된 라틴아메리카-동아시아협력포럼(FEALAC) 외교장관회의를 서울에서 주최한다. 이번 ACS 정상회의 참석은 우리의 대(對) 중남미 외교의 지평을 카리브 지역으로 확산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다자회의가 갖는 묘미의 하나는 양자 목적 방문이 어려운 경우에도 양자 접촉이나 회담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쿠바 외교장관과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예정 시간보다 배 이상으로 긴 회담을 하고 상호 관심 사안들에 대해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협의했다. 다자회의 참석의 연장선에서 이뤄졌지만, 한국 외교장관이 쿠바를 최초로 방문해 내실 있는 회담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도 이정표적 의미가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이번 방문의 모멘텀을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잘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사실 한국과 쿠바 간에는 교역은 물론, 관광·문화·스포츠·과학·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이 꾸준히 활발해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지지난해 에볼라 사태 당시 우리 정부가 시에라리온에 파견된 쿠바 의료진에게 보호 장비를 제공한 것을 비롯, 전염병 등 보건 협력 및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서도 협력의 잠재력이 많다.

최근 이란·쿠바·미얀마 등지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보면서 5년, 10년 후 이 나라들이 얼마나 크게 발전해 있을지 가늠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바나 거리를 가득 메운 미국 등 외국 관광객들이 단적인 증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역저 ‘노인과 바다’를 저술한 식당에서 차를 마시면서, 갈수록 깊은 고립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북한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올해는 한인 쿠바 이민 95주년이 되는 해다. 쿠바에는 현재 1100여 명의 후손이 있다. 이민 1세대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바 있다. 이번 한인후손회관 방문은 가슴 뭉클했다. 쿠바에 1200여 명의 한류 동호회원이 있는데, ‘카리브의 진주’로 불리는 수려한 자연 경관과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쿠바와 한국은 문화와 관광 분야에서의 협력 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한·쿠바 관계에 있어 앞으로의 미래는 지나온 과거보다 더 길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한·쿠바 관계에서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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