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도 촌스러워지거든요. 기쁜 일은 손가락 오그라드는 자랑이 되거나, 슬픈 일은 억지 신파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객관적인 시선을 갖추고, 보다 세련된 방법으로 자기(自己)를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예술도 비슷합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칭찬과 성찰 사이에서 공감을 얻는 게 중요합니다. 예컨대 역사물이라고 한다면 요즘 말로 ‘국뽕’(맹목적 애국주의를 뜻하는 속어)과 ‘국까’(무조건 국가를 깎아내린다는 뜻)를 팽팽하게 양 극단에 두고, 줄타기를 잘할수록 흥미로워질 겁니다.

촌스러워지지 않으려면, 개인이든 국가든 예술이든 ‘남’ 얘기를 잘 듣는 게 중요한데요. 그게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니 매몰될 필요는 없습니다. 지난해 5월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선보인 ‘개량’ 한복은 우리가 알던 한복보다 우아하지도 않았고, 지난 3월 아르튀르 노지시엘이 연출한 국립극단의 ‘빛의 제국’이 김영하의 소설 원작보다 완성도가 높았던 것도 아닙니다. 또 세계적인 안무가 조세 몽탈보가 한국 무용을 활용한 ‘시간의 나이’가 평소 국립무용단의 무대보다 감동적이지도 않았으니까요.(세 사람 모두 프랑스 출신인 건 그저 우연입니다.)

‘우리’ 이야기, 결국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샤넬 표 한복은 “한복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일차원적인 디자인 해석”, 연극 ‘빛의 제국’은 “남북관계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했다”는 아쉬운 평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의 나이’ 역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도 있습니다)엔 못 미쳤고요. 결론적으로 진짜 ‘우리’를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만 세련된 전달 방식을 연마하는 데엔 도움이 됩니다. 이를 통해 기대와 실제의 간극을 메우는 건 온전히 우리 몫이지요.

그런 면에서 서울예술단의 ‘국경의 남쪽’(대학로예술극장, 6월 12일까지)은 우리가 직접 우리 것으로 ‘잘’ 만든 작품입니다. 이 뮤지컬(예술단은 가무극(歌舞劇)이라 부릅니다)은 2006년 차승원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데요. 남북 분단과 탈북자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도 아주 유쾌합니다. 연인을 남겨 두고 탈북한 남자가 남쪽에서 가정을 꾸립니다. 무겁고 진부한 소재를 멜로와 유머로 풀어내 애잔하지만, 담담하게 들여다보게 합니다. ‘우리’가 아니면 불가능할 관찰, 공감, 고민, 이해.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를 탄생시킨 추민주 연출이 이번에도 아주 담백한 요리를 내놓은 것이지요. 시선은 객관적이고, 그 기술은 세련됐으며, 무엇보다 멜로와 신파 사이의 줄타기가 탁월합니다.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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