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영 워싱턴 특파원

이례적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올해 미국 대선에 이번에는 ‘제3 후보’ 돌풍이 불 조짐이 있다. 진원지는 자유당으로, 최근 지명이 확정된 게리 존슨(63) 자유당 대선 후보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것. 존슨 후보는 이달 초 모닝 컨설트 여론조사에서 10% 지지율을 얻었고, 지난 4일 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8%에 달했다. 민주·공화당 양당 체제가 굳건한 미국에서 제3 후보가 두 자릿수 안팎의 지지율을 얻는 것은 흔치 않다. 1971년 창당된 자유당은 1980년 대선에서 1.06%를 득표한 게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가장 성공적인 제3 후보로 꼽히는 로스 페로(무소속)가 1992년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은 18.9%였고, 2000년 랄프 네이더 녹색당 후보의 득표율은 2.74%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존슨 후보의 지지율 상승 원인으로 이번 대선이 역대 가장 비호감인 후보들이 맞붙는 구도로 확정되면서 유권자들의 제3 후보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워싱턴포스트(WP) 여론조사에서 사실상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는 각각 57%에 달했다. 양당 체제에 대한 피로감이 트럼프와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아웃 사이더’ 열풍으로 번지더니, 이번에는 신뢰할 만한 호감도 높은 후보의 부재가 제3 후보라는 대안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유당도 양당 체제가 낳은 틈새를 파고들었다. 정부 긴축재정·감세 등 공화당의 전통적 가치를 주창하되, 민주당이 추구해온 동성결혼 허용·낙태 옹호 등 사회적 진보 가치는 수용하는 ‘혼합’ 노선을 내건 것. 1995∼2003년 뉴멕시코 주지사를 지낸 존슨 후보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우세한 뉴멕시코에서 공화당 후보로 주지사를 연임한 존슨 후보는 재직 당시 주 정부 예산을 10% 삭감했지만, 교육 개혁·마리화나 합법화도 추진했다. 빌 웰드 자유당 부통령 후보도 유사한 정책으로 1991∼1997년 민주당이 우세한 매사추세츠에서 2차례 공화당 주지사를 지냈다. 다만 자유당 돌풍이 태풍으로 변할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9월 말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민주·공화당 후보와 어깨를 견주려면 7월까지 치러지는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15% 획득부터 달성해야 한다. 이 문턱을 넘은 제3 후보는 1992년 페로가 마지막이었다.

그럼에도 미국 언론들이 존슨 후보를 주목하는 것은 올해 ‘트럼프 현상’으로 대표되는 유권자들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분노, 양당 체제에 대한 좌절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정치에 대한 염증은 지난 4월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이 한국에서도 만만치 않다. 국내 언론들이 5월 말 한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를 주시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잠복해 있던 제3 후보에 대한 갈증이 자질·역량 있는 후보를 만나면 폭발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타진해본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반 총장이 8일 미국 뉴욕을 찾는 친노계 핵심 정치인인 이해찬(무소속) 의원과의 면담을 먼저 요청했다. 면담 공개 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리면서 이 의원 측이 막판에 면담을 취소하기는 했지만, 노무현정부의 외교통상부 장관 출신인 반 총장이 취임 뒤 9년 만에 처음으로 친노계 인사와의 접촉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정치 행보라는 해석이 충분히 나올 만하다. 물론 반 총장 임기는 6개월이 남았고, 내년 12월 대선까지도 1년 반이 남아 있다. 또 반 총장이 기존 정당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독자적 제3 후보로 나설지도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반 총장의 결단이 단순한 제3 후보에 대한 국내적 열망에만 의지한다면 곤란하다. 미국 자유당의 때아닌 선전은 제3 후보에 대한 열망에 힘입기는 했지만, 밑바닥에는 차별화된 정책 노선이 놓여 있다. 반면 반 총장은 유만(油鰻·기름장어)이라는 별명답게 매사에 똑 부러지는 답을 내놓은 적이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반 총장은 “외교관 출신이 갈등이 심한 국내 정치에 적합한지는 의문”이라는 이해찬 의원이 던진 화두부터 먼저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boyoung22@
신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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