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新)공항이라는 판도라 상자가 보름 남짓 후에 열린다. 국토교통부가 입지 선정 용역을 맡긴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과의 계약 만료일이 24일이다.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어느 곳이 되든 후유증은 클 것이다. 영남 민심은 부산과 대구·경북·울산·경남으로 두 동강 났다.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 혈투로도 불린다. 밀양은 행정구역상 PK 지역이지만, 생활권 중심으로 TK와 연합하면서 부산에 대항하는 형세다. 벌써 10년째다. 2006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검토 지시로 처음 공식화한 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제시했고, 2011년 3월 백지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꺼져가던 불씨를 2012년 대선에서 되살렸다.
그러나 신공항이 부활하는 과정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명박정부가 2011년 신공항 불가 결정을 내린 근거는 경제성이었다. 당시 가덕도와 밀양은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에서 각각 0.7, 0.73을 받아 경제성 기준인 1에 미달했다. 그때 ‘김해공항의 운용 여력이 2027년까지 충분하다’며 백지화를 이끌었던 국토부는 2014년 ‘2023년이면 포화상태가 된다’며 스스로 말을 뒤집었다. 똑같은 조직이 불과 3년 만에 현저히 다른 자료로 정반대의 결론을 낸 것은 ‘윗선의 의중’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때 이미 관여했던 ADPi는 세계 100여 개 공항 설계에 참여한 기업이다. 공항을 새로 짓는 쪽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김해공항의 항공 수요가 달라졌다고 신공항이 바로 경제성을 획득한 것으로 치부하는 건 비약이다. 공항이 비좁아지면 확장 방안부터 고려하는 게 순서다. 하지만 김해공항 활용 논의는 신공항 기세에 눌려 뒷전이다. 백지화 당시에도 10조 원이 들어가는 신공항보다 3조 원으로 가능한 확장안이 합리적이란 의견이 많았다. 그걸 의식했는지 밀양과 가덕도는 두 번째 도전에서 사업비를 애초의 절반가량인 5조∼6조 원대로 대폭 줄였다.
발표가 임박하면서 가덕도와 밀양의 기류에는 미묘한 차이가 감지된다. 지난주 여야 정치인이 가세한 부산 촛불집회에서는 ‘가덕 신공항 안되면 민란이 일어난다’는 구호가 등장했다. 대구 등에선 ‘결과를 기다리고 승복해야 한다’는 다소 느긋한 반응이 주류다. 신공항 입지를 두고 가덕도는 밀양의 주변 산들이 이착륙에 방해가 된다는 점을, 밀양은 가덕도 매립지의 침하 가능성을 각각 주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부산에선 밀양의 약점인 ‘고정 장애물’이 평가항목에서 빠진 것으로 의심한다. 국토부 장관과 청와대 정책수석 등이 TK 일색이라는 점에도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다. 반면 대구 등에선 집권세력이 고향의 마지막 염원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희망에 기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신공항발 정계개편론으로 폭을 넓혀가는 양상이다. 밀양이 선정되면 PK는 TK와 결별하면서 1990년 3당 합당 이후 26년 지속해온 영남 양대 세력의 연합이 깨질 가능성이 크다. 가덕도로 결론 나면 현 정권의 고정 텃밭이 흔들리면서 반기문 간판의 ‘충청+TK’ 연대 시나리오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차기 대권 주자와도 어떤 식으로든 엮이게 돼 있는 구도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13 총선 때 ‘부산에서 5명 당선’을 조건으로 가덕도 관철을 약속했고, 결과는 딱 그대로 됐다. 국민의당은 내심 안철수 대표의 고향인 부산에 기울어 있다. 비박의 중심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상황에 따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신공항 건설이 잘못된 공약임을 인정하고 철회한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 등을 의식해 3차례나 결정을 미뤘다. 지지 기반 어느 쪽도 잃지 않으려고 모두 탈락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은 백지화 직후 “계속 추진”을 밝혀 분란의 소지를 남겼고, 2012년 대선 때 특정 지역 언급을 회피한 채 ‘신공항 건설’을 역설했다. 신공항에는 공약부터 백지화, 그리고 2라운드에 이르기까지 영남권 표를 노린 정략이 줄곧 개입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전문가 평가보다 정치공학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쪽으로 정해지든 패자는 승복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지도자가 국익보다 정치적 이해를 앞세운 귀결이다. 신공항은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을 넘어 두고두고 나라를 뒤흔들 괴물이 돼버렸다. 정치공학에 포위된 신공항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