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그림은 서양에서 15세기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에서 개인 서재를 그린 스투디올로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다양하고 보배로운 물품을 다룬 다보격경으로 전개됐다. 18세기 후반 조선에 전해진 책그림은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 병풍을 설치했던 정조시대에 성했으며 책거리로 발전했다.
또한 한자문화권 국가들은 수(壽), 복(福) 같은 한자와 사물을 합해 문자도를 그렸다. 우리나라에선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이 담긴 여덟 문자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를 서체 조형과 상징 이미지로 재해석한 특유의 유교문자도가 유행했다.
문자와 책을 토대로 하는 책거리와 문자도는 궁중화로 시작해 200여년 간 민화로 저변화했다. 학문 숭상, 출세욕 등 조선사회의 정치·취미·욕망이 반영된 우리 문화의 보물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의 ‘조선 궁중화 민화 걸작’전(8월 28일까지)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책거리와 문자도의 명작을 본격 공개하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2층 전시장 입구의 가로 18m 높이 10m의 대형 벽면에 걸린 단 한 점의 전시작 ‘호피장막도’(사진)부터 시각적 경이와 감동을 전한다. 호피무늬 장막을 친 서재풍경, 장막 뒤쪽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희한한 그림이 19세기 병풍이다. 원래 호피무늬만의 8폭 병풍은, 다른 화가가 병풍의 중앙을 잘라내고 문방구, 공작 깃털, 생황, 안경, 골패 등이 있는 선비의 공간을 추가로 그린 듯, 호피무늬와 문방도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책들로 빼곡한 국립고궁박물관의 10폭 병풍 ‘책가도’는 중간색의 사실적 묘사가 오히려 현대 추상화 같다. 책거리와 문자도를 조합한 강원도 민화의 경우, 납작하게 평면화한 책거리와 가구에 화조도가 더해진 구도에서 앙리 마티스의 회화를 연상케 한다.
서예박물관 재개관을 기념해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 ‘서화동원(書畵同源)’이며 서(書)가 모든 예술의 토대임을 일깨우는 기획이다. 활자 책과 직결되고 현대 문자디자인 추상화와도 이어지는 서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 전시는 예술의전당이 현대화랑과 협업해 일반에 공개되지 않던 미술관 박물관 및 개인 소장품까지 조선시대 궁중화와 민화 58점을 공개한다. 대부분 작가 불명이다.
미술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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