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로 2016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마르세유 거리에서 11일(한국시간) 잉글랜드 팬들이 횃불을 밝히며 장외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다음 날 열린 잉글랜드-러시아의 경기 직후 잉글랜드 팬과 러시아 팬 사이에서 폭력 사태가 빚어졌다.  AFP연합뉴스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로 2016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마르세유 거리에서 11일(한국시간) 잉글랜드 팬들이 횃불을 밝히며 장외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다음 날 열린 잉글랜드-러시아의 경기 직후 잉글랜드 팬과 러시아 팬 사이에서 폭력 사태가 빚어졌다. AFP연합뉴스
훌리건(Hooligan)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로 2016이 훌리건(Hooligan)의 난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B조 조별리그 잉글랜드-러시아의 1차전이 열리기 전부터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소동을 일으켰고, 경기 전날에는 러시아 훌리건과 충돌했다. 12일 오전(한국시간) 1차전이 끝난 뒤엔 러시아 훌리건이 잉글랜드 응원석에 난입해 폭력 사태가 이어졌고, 경기장 밖에서도 양국 훌리건이 충돌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3명이 중상을 입는 등 부상자가 30명 넘게 발생했고,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까지 동원해 훌리건들을 진압했다. 니스에서는 폴란드와 북아일랜드의 경기를 앞두고 현지 훌리건들이 두 나라의 축구 팬을 공격했다. 릴에서는 독일과 우크라이나 경기 후 훌리건 50여 명이 물리적으로 충돌, 21명이 프랑스 당국에 체포됐다.

훌리건은 거리에서 싸움을 일삼는 불량배나 부랑아 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문헌에는 이 말이 처음 쓰인 것이 1989년 영국의 한 신문이라고 돼 있다. 어원에 대해서는 영국 런던 거리를 다니며 폭동을 일으켜 체포된 젊은이들을 언론이 훌리 갱(Hooley’s gang)이라고 표현하면서 등장했다는 설과 아일랜드 출신 유명한 폭력배인 패트릭 훌리한(Patrick Hoolihan)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 등이 있다. 축구 난동꾼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다. 영국 보수당 정권하에서 사회복지 축소, 빈부 격차가 심화한 것에 반발한 실업자와 빈민층이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3년 리버풀에서 더 콥(The Kop)이라는 조직화한 응원단이 등장하면서 훌리건의 폭력사태는 거대 과격해졌다. 또 교통수단이 발달해 축구 팬의 원정 응원이 활발해지면서 원정 팬과 홈 팬 간의 충돌도 빈번해졌다.

유럽에서 유독 훌리건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로는 비교적 좁은 지역에 라틴족, 앵글로색슨족, 게르만족, 슬라브족, 켈트족, 바이킹족 등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고, 과거 빈번했던 전쟁의 경험을 갖고 있는 점이 지적된다. 민족, 국가가 얽힌 역사와 감정이 축구로 표출되면서 폭력적인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 훌리건이 이번에 난동을 부린 데에는 프랑스 혐오증이 한 요인으로 꼽힌다. 노르만의 잉글랜드 점령, 백년전쟁 등을 거치면서 쌓인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분위기도 훌리건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영국 경제 침체에 대한 EU 책임론과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타인종,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성향과 극우주의적 분위기는 다른 유럽 나라에서도 훌리건 발생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산업구조 변화로 강인한 육체적 노동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 쇠퇴하면서 남성다움이 더 이상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남성다움을 표출할 수 있는 출구가 없어지면서 축구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는 의미다. 축구 대중화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축구 분석 경제학자인 스테판 지만스키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유럽과 남미 지역의 축구장이 대부분 슬럼화되고 범죄가 많은 대도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축구 폭력의 주동자인 청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훌리건 발생 이유로 들었다. 도시 외곽에 자리 잡아 가족 단위의 수준 높은 관중을 끌어모아 수익을 창출하는 미국의 프로야구와 달리 축구는 많은 대중을 끌어모으는 것이 중요했고,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해 적극적으로 훌리건을 장려하기도 했다는 지적이다. 리랜더 반 데 메지 암스테르담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남성 팬 중 일부는 축구 경기 관전 도중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경우가 있다.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 질 경우 코티솔 수치가 급상승해 반사회적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

훌리건으로 인해 발생한 가장 대표적인 사고는 ‘헤이젤 참사’다. 1985년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 경기장에서 열린 잉글랜드 리버풀과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리버풀 훌리건이 이탈리아 응원단을 향해 돌진하면서 스탠드가 붕괴됐다. 39명이 압사하고 454명이 다쳤고, 이로 인해 잉글랜드 클럽팀은 5년간(리버풀은 7년) 국제 대회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4년 뒤인 1989년 4월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클럽 간 영국 축구협회컵 준결승전이 열린 셰필드의 힐스버러 축구장에서도 압사 사건이 발생했다. 리버풀의 응원단이 입석 관중석으로 몰려들어 96명이 사망하고 766명이 다쳤다.

유로 2000에서는 잉글랜드와 독일의 경기 후 잉글랜드 훌리건이 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며 난동을 피웠다. 벨기에 경찰은 현장에서만 150명 넘게 체포했다. 유로 2004 당시 포르투갈 휴양도시 알부페이라에서 술 취한 잉글랜드 훌리건이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3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마르세유에서 대규모 시가전까지 벌여 프랑스 경찰 1명이 사망했고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프랑스 정부에 정식으로 사과했다.

최근에는 러시아 훌리건의 폭력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유로 2012 러시아-체코전에서 러시아 관중 30여 명이 경기 도중 그라운드에 난입해 진행 요원 4명을 집단 폭행하고 체코 선수에게 인종차별적 폭언을 퍼부었다. 바르샤바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폴란드전을 앞두고는 양국 팬이 충돌해 양측을 합해 200여 명이 체포되고 10명 이상이 다쳤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건은 1964년 페루 리마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페루와 아르헨티나의 1964 도쿄올림픽 예선 경기에서 발생했다. 0-1로 뒤지던 페루가 경기 종료 2분 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으나 주심은 노골을 선언했다. 성난 관중은 경기장으로 뛰어들었고 아수라장이 됐다. 무려 318명이 사망하고 500명이 이상이 다쳤고, 페루 정부는 계엄령까지 선포했다.

아르헨티나의 라이벌 축구팀인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경기에서도 압사 사고가 난 적이 있다. 1968년 6월 리버 플레이트 경기장에서 더비가 끝난 후 보카 주니어스 팬들이 위층에서 불붙은 종이를 던지자 이를 피하려던 아래층 관중이 출구로 몰리면서 사고가 발생해 74명이 죽고 150명이 다쳤다.

2012년 2월 이집트 북동부 포트사이드에서는 엘 마스리와 엘 아흘리의 경기가 끝난 뒤 양 팀 팬이 충돌해 7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성진·전현진 기자 threem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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