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미국 페미니즘(여성주의)의 승리이기도 하다. 전미여성기구(NOW)의 테리 오닐 회장은 “클린턴 전 장관이 여성에 적용되는 이중 잣대를 극복하고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평했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는 여론조사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NBC 방송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여성 지지율에서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13%포인트 차로 앞섰다. 지지율이 높아 보이지만 클린턴 전 장관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상대로 여성 표를 17%포인트 더 받은 것보다 적은 것이다. 여성인 클린턴 전 장관이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던 남편만큼도 여성 지지를 못 받는, 일종의 아이러니다.
뉴욕타임스(NYT)·파이낸셜 타임스(FT)는 클린턴 전 장관을 비롯한 1970~1980년대 ‘제2 페미니즘 물결’ 세대가 갖는 한계가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1800년대 여성 참정권 확보에 방점을 뒀던 ‘제1 페미니즘 물결’에 뒤이은 제2 페미니즘 세대는 양성평등과 워킹맘 처우 개선에만 주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페미니즘으로는 성·인종·계층 문제가 중첩돼 있는 현재의 다분화된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없고, 이게 젊은 여성층이 이탈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대니엘 앨런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1980~1990년대를 산 여성들은 클린턴 전 장관에 공감하지만, 젊은 여성들은 클린턴 전 장관이 남편의 성 추문 뒤에도 결혼을 유지한 것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2 페미니즘 세대는 일하는 여성의 월급을 남성의 96%까지 끌어 올렸지만, 기혼 여성의 처우 개선은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다. 여전히 기혼 여성은 남성이 1달러 받을 때 76센트밖에 받지 못한다. 클린턴 전 장관이 외동딸 첼시를 양육한 1980년대에 비하면 지금의 육아 환경은 훨씬 나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클린턴 전 장관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광을 누렸고, 줄곧 ‘양지’만 걸어왔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미국에서도 같은 여성이지만 ‘금수저’, ‘흙수저’는 따로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제 페미니즘의 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혼 여성이나 전업주부도 감싸 안아야 하며, 단순한 양성평등만을 부르짖기보다는 인종·계층 문제를 포함한 큰 그림에서 여성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페미니즘 이론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도 헌정 수립 64년 만에 미국보다 빨리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1990년대 미국에서 수입된 한국의 페미니즘도 결혼이주여성이나 청년 실업 등 환경 변화에 맞닥뜨려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점화된 ‘여혐(여성혐오)’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도 숙제다. 이제 막 ‘유리 천장’을 깬 미국의 페미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워싱턴 = 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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