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교 정치부 차장

황혼의 두 신사가 있다. 한 사람은 앉고, 다른 한 사람은 섰다. 큰 키의 사내는 왼쪽 손을 살짝 노부(老夫)의 어깨에 얹었다. 애정과 존경, 기대가 어린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연출된 듯한 계면쩍은 미소도 머금었다. 운정재단이 13일 이례적으로 공개한 두 장의 사진 중 하나다. 제목은 ‘김종필 전 총리(JP) 자택을 방문한 반기문 총장’이었다. 지난 5월 말 방한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일정은 철저하게 대권 도전 정치인의 행보로 짜여졌다. 충청권 맹주 JP 면담은 그 절정이었다.

국내외 무대에서 반 총장은 여전히 분주하다. 12일에는 우간다의 루하카나 루군다 총리도 만났다. 30년 철권통치 독재자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의 5선 성공,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2030년 에이즈 퇴치 계획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야당인 민주개혁포럼(FDC) 탄압과 우간다 인권 상황을 우려하는 내용도 있었다. 반 총장의 유엔 회원국 총리 접촉에 색안경은 필요 없다. 그러나 보름 전, 박근혜 대통령의 우간다 순방과 맞물려 눈길이 간다.

그동안 유엔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반 총장-김용 세계은행 총재, ‘스리 코리안’의 삼각협력이 끊임없이 회자됐다. 박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를 원하고, 반 총장은 아프리카 개발 지원 정책을 임기 최대 업적으로 삼으려 하고, 김 총재는 명분 있는 개발 투자처를 찾고 있다. 그래서 반 총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관심은 현재·미래의 복합 진행형인지 모른다. 퇴임 후를 봐 줄 후견성 관리자 물색인 동시에 부녀 대통령을 연결하는 정책 계승자의 발탁 성격도 있다.

충청 출신 인사 모임인 ‘백소회’ 핵심 멤버 5인이 반 총장 방한을 즈음해 모였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년 대선 승리 가능성에 맞춰졌다. 난상토론 끝에 대권가도 ‘3불(不)론’이 나왔다. 외교부 출신 관료들이 전면에 나서면 안 되고, 충청 대망론을 내세워도 안 되며, 박 대통령을 등에 업어도 안 된다는 논리였다. 백소회를 이끄는 이들은 구 정치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있다. 새 시대는 사회 통합적이며, 초계파·초지역적이고, 낡은 권력의 틀에서 독립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은 철저하게 낮은 곳에서 잉태된다. 머릿속부터 뼛속까지 겸허해야 하고, 국민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꿈과 희망, 비전을 안겨줘야 한다.

젊은 소년, 반 총장의 또 다른 사진이 떠올랐다. 충북 충주고 재학시절 영어웅변대회에서 우승한 그는 1962년 적십자 비스타(VISTA) 프로그램을 통해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을 워싱턴에서 만난다. 사진 속 반 총장은 살포시 웃고 있었다. 54년 뒤 어색한 미소와는 다르다.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 있다. 그때 그 소년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보다 아름다운 세계로 만들고 싶다’고 결심했다(‘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에서). 반 총장은 자신의 꿈이 아닌 국민의 꿈을 좇아야 한다. ‘기름장어’라는 별명답게 이원정부제 외교대통령 개헌 논의에 촉각을 세우겠지만, 눈을 부릅뜨고 스스로 시대정신을 갖고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유력 주자가 없다는 현실은 답이 아니다. 어설픈 기성 정치인 흉내로는 백전백패다. jklee@
이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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