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의 융합형 인재 육성 논의에서 보듯이 학생들에게 어떠한 학력(學力)을 길러줄 것인지는 시대와 사회를 불문하고 중요한 교육적 과제다. 캐나다, 영국, 호주, 독일, 일본 등 선진 각국은 미래사회를 진단하고,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21세기 사회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을 규명하고 그 구현에 진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학력은 학교에서 교과로 분절된 커리큘럼을 전제로 한 지식·기능 학습의 달성도를 의미했다. 이러한 학력은 가시적이고 측정 가능한 학력만을 대상으로 하므로 개인의 성공적인 삶을 예측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21세기 사회의 특징은 변화, 복잡성, 상호의존이라는 3개의 관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지식과 기술의 가속도적 혁신은 끊임없이 변화를 초래하고, 사회는 날로 복잡성을 더해가고, 글로벌화의 진전은 세계와의 상호의존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미래세대의 성공적인 삶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교과를 전제로 한 학력을 포함함과 동시에 이를 넘어선 새로운 학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학력의 특징은, 기본적인 지식·기능 능력 외에 문제 해결, 창조성 등의 능력, 대인관계 능력, 인성 등과 같은 인간의 전체적인 능력을 포함하고, 이를 교육 목표와 평가의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논의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3년 ‘핵심 역량의 정의와 선택’이라는 데세코(DeSeCo) 프로젝트다. 여기에서는 미래세대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으로 도구의 상호작용적 활용 능력, 이질적 집단에서의 교류 능력, 자율적인 행동력이라는 3개의 범주를 제시한다. 이는 복잡한 세계에서 새로운 기술의 필요성, 다원화 사회에서 다양성을 다룰 필요성, 자신의 정체성과 목표를 실현할 필요성에서 선정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종래의 교육이 추구해 온 지식·기능 중심의 학력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새로운 능력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2000년에 시작된 OECD 주관의 국제학력도달도평가(PISA)에서도 학교 커리큘럼만이 아니라 학생의 장래 생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능력을 중시한다.
세계 각국은 데세코의 준거 틀 안에서 사회문화적, 역사적 맥락과 교육적 상황 등을 고려해 핵심 역량을 설정한다. 일본은 향후 교육과정 개정에 대비해 2013년에 기초력·사고력·실천력의 3개 항목 아래 자율적 활동력, 인간관계 형성 능력, 사회 참가 능력, 논리적·비판적 사고력 등 10개 세부 항목을 제시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자기관리, 지식정보 처리, 창의적 사고, 심미적 감성, 의사소통, 공동체라는 6개 항목을 제시한다.
역량 중심의 학력관은 변화가 심한 21세기 사회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숙고에서 출발한다. 학교 시험과 수능 중심의 학력을 추구하는 교육으로는 자율성, 창의력, 공감 및 소통 능력, 협업 능력 등과 같은 사회적인 삶의 맥락에서 필요한 역량을 키울 수 없다는 인식에서이다. 이는 학교의 교과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는 학력에서 개인의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능력을 측정하는 ‘안 것을 활용해 해결하는’ 학력으로의 전환이다.
역량 중심 교육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교육목표를 비롯한 교육과정의 모든 영역을 이에 맞춰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핵심 역량에 기초해 교과별 역량을 추출하고 성취 기준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학교 교육과정 설계, 수업 및 평가 방법과 관련해서는 해결할 과제가 많다. 역량 중심의 교실수업 사례로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이나 ‘하브루타’(HAVRUTA) 수업은 질문이나 토론 등 상호작용에 기반을 둔 과제 활동을 중시하고, 교육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수행평가’에서는 창의력·문제해결력 등의 역량을 중시한다.
최근 영국의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서 한국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로 활발한 토론 부족을 지적한 것은 교육적 측면에서 성찰해 볼 점이다. 이는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의 삶에 필요한 역량을 규명하고, 학교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역량에 맞게 혁신(革新)해 제공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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