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이름은 송은하, 27세, 평양악극단 소속이 된 지 4년째라고 했다. 밤 11시 반. 이곳은 제11초대소의 방 안이다. 송은하와 함께 방으로 돌아온 것이다. 송은하는 은색 가운으로 갈아입었는데 온몸의 곡선이 드러났다. 초대소 방에서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서동수는 오늘도 감동한다. 김동일과 나눈 한반도 역사를 바꿀 만한 이야기도 잠깐 잊을 정도다. 그만큼 여자의 매력은 정신을 흐리게 한다. 백두산 인삼주를 마신 취기가 뒤늦게 올라오고 있다.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갈 거냐?”

뻔히 알면서도 서동수가 묻자 송은하는 다소곳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장관님.”

“언제부터 내 파트너가 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냉장고 옆쪽 찬장에서 위스키병과 잔을 꺼내면서 물었더니 송은하가 서둘러 다가와 거들면서 대답했다.

“연회 준비를 하면서 들었습니다.”

“마른안주나 탁자 위에 갖다 놔.”

“네, 장관님.”

“내가 여자 좋아한다고 위원장께선 매번 신경을 써 주시는군.”

혼잣소리처럼 말한 서동수가 술병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마른안주와 얼음통까지 탁자 위에 갖다놓은 송은하의 얼굴에 엷게 웃음이 떠올라 있다. 서동수가 송은하의 잔에도 술을 채워주면서 물었다.

“하지만 난 꼭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야. 그것을 위원장께서도 아시지. 넌 내 파트너가 된 대가로 뭘 갖고 싶어?”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송은하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맑은 눈, 속눈썹이 가늘어 눈동자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서동수는 자신의 몸이 송은하의 눈 안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을 마력(魔力)이라고 하는가? 그때 송은하가 말했다.

“평양악극단이 한랜드에서 정기 공연을 하도록 해주세요.”

송은하의 두 눈이 반짝였고 윤기 흐르는 입술이 반쯤 벌어져 있다. 서동수가 시선만 주었을 때 송은하의 말이 이어졌다.

“단원이 모두 70명입니다. 가수가 8명, 밴드가 27명, 무용수가 23명, 제작원이 10여 명인데요…….”

“오늘 봤어.”

서동수가 말을 잘랐다.

“네가 가장 눈에 띄더구나. 위원장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작년에 중국 순회공연을 했는데 수익을 별로 내지 못했어요.”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송은하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남조선의 K-팝이 대세거든요. 우린 그런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한래드에서도 K-팝이 인기인데.”

서동수가 술잔을 들고 송은하를 보았다. K-팝이 일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금방 모방할 수 있다면 지금쯤 세계 각국에서 알파벳 26자를 다 쓰고도 모자랄 만큼 팝이 범람했을 것이다. 한 모금 술을 삼킨 서동수가 말했다.

“좋아. 평양악극단 전용 극장을 만들어 주도록 하지.”

숨을 들이켠 송은하가 시선만 주었을 때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악극단을 한랜드의 전속 극단으로 계약하면 되겠군. 그렇지?”

“그, 그것은…….”

송은하의 얼굴이 붉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정기 공연을 부탁했는데 전속 극단으로 계약하겠다니. 예를 든다면 월셋집을, 그것도 후불 조건으로 월셋집을 얻으려고 부탁했다가 덜컥 전셋집을 공짜로 주겠다는 말을 들은 것과 같다. 그때 서동수가 말했다.

“물론 조건이 있어. 네가 내 애인이 되는 거야. 그쯤은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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