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고민’ 안고 홀로 순례길 오르는 74세 오세영 시인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길을 좇아 나도 한(韓)민족의 원류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네요.”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노래해 온 오세영(74·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사진) 시인이 21일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으로 순례의 길을 떠난다. 오 시인은 7월 21일까지 약 한 달간의 일정으로 ‘나 홀로’ 배낭여행을 할 계획이다. 70대 중반의 원로 시인으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도전’이다.

오 시인은 15일 “별 이유는 없다. 그곳이 궁금하다. 쉬고 돌아올 것”이라며 “시를 쓰는 건 그다음이다. 내 마음과 주변 환경이 허락한다면 시는 나중에 쓸 수 있지 않을까”하고 여운을 남겼다.

오 시인의 목적지 파미르 고원은 오지 중의 오지다. 평균 고도 약 5000m로 히말라야, 톈산(天山) 같은 거대 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거의 1년 내내 눈이 쌓여 있을 정도로 춥고 건조하다. ‘실크로드’의 길목에 있었기에 아시아의 옛 상인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시단의 원로인 오 시인은 “미당 선생님도 파미르 고원과 가까운 알타이 산맥에 여행을 다녀오신 적이 있다. 나도 그분 흉내를 내는 거다”라고 겸손해 하며, “미당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한민족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민족은 파미르 고원 인근 알타이 산맥지대에 거주했던 알타이족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타이족과 함께 시베리아에 살던 우리의 선조들은 ‘민족대이동’의 물결을 따라 몽골과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했다.

오 시인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약 40일간 남미 안데스 산맥 지역을 여행했다. 그때도 70대 나이에 그런 여행을 할 수 있겠느냐는 주위의 걱정을 많이 들었다”면서 “몸무게는 4㎏이나 빠졌지만 그곳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여행이란 몸으로 시를 쓰는 행위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오 시인은 안데스 산맥 여행을 다녀온 후 지은 시 중 5편을 시 전문 계간지 ‘포엠포엠’ 여름호에 펴냈다. 이 중 ‘고산병’에는 노(老)시인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떠날 때/ 70대의 나이에 그런 여행을 할 수 있겠느냐며/ 정말 몸조심해서 잘 다녀오라고/ 허그를 해 주던 그 여자/ 그때 그녀의 체취에서 언뜻 맡았던/ 그 청량하면서도 감미로운 향기가/ 어디선가 아련히 풍겨온다…/ 아아, 내 나이 70대/ 고산병 앓으며 살아온 환영(幻影)의 한 생애’.

오 시인은 1968년 박목월 시인에 의해 ‘잠 깨는 추상’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 연시’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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