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두 연세대 교수·유럽지역학

영국은 섬나라가 아니다. 해저 터널로 유럽 대륙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영국인은 아직도 섬나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영국인이 파리나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주변 사람에게 유럽에 간다고 기별한다. 영국은 유럽에 속하면서 유럽과 구별되는 나라인 것이다.

1차 대전 이전까지 영국의 대(對)유럽 정책은 균형자 정책이었다. 당시 유럽 강국들은 세력 균형을 통해 전쟁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동맹을 교체했지만, 영국은 그 어느 유럽국과도 동맹을 맺지 않았다. 다만, 약한 동맹을 외교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세력 균형을 보완하는 균형자 역할을 취했다. 이러한 ‘위대한 고립(splendid isolation)’ 정책으로 영국은 200년 동안 대륙의 전쟁에 말려들지 않고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 지 40년 만에 영국인들이 유로화 위기, 난민 위기 등으로 혼란스러운 유럽을 떠날지 고민하고 있다. 일주일 뒤로 다가온 국민투표에서 영국이 EU를 떠나는 브렉시트(Brexit)가 현실화한다면 큰 충격이 발생할 것이다. EU 회원국 간에는 경제통합이 거의 완성됐고 유럽합중국 건설을 목표로 하는 정치통합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회원국 탈퇴는 EU의 살을 찢고 뼈를 도려내는 것과도 같다.

브렉시트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통상(通商) 대응책을 요구할 것이다.

첫째, 영국은 EU에서 가장 외국인 투자 유입이 많은 나라다. 낮은 규제와 세율이 외국인 직접투자의 유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 시장을 공략하려는 다국적 기업들은 영국에 많은 유럽법인을 두고 있다. 브렉시트의 경우 영국을 유럽 시장의 진입 관문으로 설정한 한국 기업은 궤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영 간에 양자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필요하다. 우리는 EU라는 다자기구와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영국이 EU를 떠나게 되면 영국과 독자적인 FTA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새로운 협정 체결을 위해 많은 시간·비용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한국과 EU 간의 원산지(原産地) 규정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FTA 체결국 상호 간에는 자국 생산품이라는 원산지 증명을 해야 무관세(無關稅) 혜택이 가능하다. 그런데 EU의 경우에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간주돼 회원국 간의 원산지 누적증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브렉시트의 경우 영국산 재료가 포함된 유럽 상품은 그만큼 원산지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다. 영국이 유럽의 상품 생산에 긴밀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에 유럽의 수출 상품에서 영국의 기여분을 뺀다면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 종류가 많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영국을 EU의 생산 네트워크로 인정해 주고 현재의 원산지 누적 범위에 포함시켜 인정해줄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다행히 우리에게 최소한 2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영국이 EU에 탈퇴를 통보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영국과 EU 간의 법적 관계가 해소되는 게 아니라, 리스본협정에 따라 2년간의 정리기간이 있다. 이 기간에 우리가 영국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지 않는다면 양국 간에는 교역과 관세 체계가 없는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

EU로부터의 탈퇴가 영국으로 하여금 국가 독자성을 회복하고 과거의 영광스러운 고립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국인의 역사적인 결정은 먼 나라 이웃인 한국인에게 많은 숙제를 안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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