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국내선 비행이 있는 날이면 내 모든 집중력을 동원해 긴장모드로 돌입한다.

보통 국제선보다는 국내선의 일이 수월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듣기도 하지만 모든 일은 해보기 전에는 그 일의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 이를테면 국제선은 긴 호흡을 끌고 가는 마라톤과 같고, 국내선은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단거리 달리기 같은 느낌이다.

국내선 비행이 있는 날, 정오부터 준비를 하고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오늘의 승객현황을 비롯해 안전 점검 사항, 서비스 전반의 내용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오후 5시 부산에서부터 시작될 비행을 위해 서울 부산 구간의 비행기에 승객처럼 탑승을 하는 편승 비행을 한다.

오후 6시 부산에 도착했지만 근무의 시작은 아직이다. 다시 준비를 하고, 7시 비로소 비행기에 오른다. 승객 탑승 시작 전에 비행기 내부의 청소상태와 보안점검을 하고 서비스 용품의 탑재 여부를 확인하고 기장과 브리핑을 한다. 기상을 비롯해 항공기 간의 연결이 제 시각에 맞춰 이뤄져야만, 준비도 탑승도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 비로소 모든 준비가 갖춰지면 승객을 맞이할 경쾌한 보딩 뮤직을 틀고 탑승이 시작된다.

제주를 오고가는 비행기에는 가족 단위의 승객들이 많다. 때로는 한 비행기에 30명 이상의 아기 손님들이 탑승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승무원들도 미리 아기 손님들에게 제공할 빨대와 종이컵 뚜껑 등을 넉넉히 준비해 두고, 짧은 시간이라도 푹 쉬고 싶은 주위의 다른 손님들을 위해 귀마개도 충분히 확보해둔다.

제주행 비행에서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도 많이 만난다. 학생 손님들에게는 단연 콜라가 인기라서 미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데도 불구하고 부족한 경우가 가끔 있다. 토마토 주스는 또 어떠한가. 달콤한 맛으로 국내선에서 가장 인기음료인 토마토 주스는 예쁘고 빨간 빛깔이 이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빛깔이 된다. 행여나 손님에게 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따라 건네드리는, 간단한 듯 하지만 방심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음료서비스를 마무리한다.

곧 제주에 도착하겠다는 기장의 방송이 흘러나오면 서비스 물품을 회수하고 승객들의 좌석벨트 착용 여부, 등받침의 원위치 상태 등을 꼼꼼히 점검한다. 승무원들도 지정된 자리에 앉아 안전한 착륙에 대비한다. 도착 후 항공기의 도어모드를 다시 한번 체크하고, 조심히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하며 승객들의 하기를 돕는다. 그런 후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은 채 승객의 탑승에 앞서 했던 모든 과정을 다시 한번 한다. 이번엔 여행의 피로로 지친 기색의 승객들이 탑승한다. 초콜릿과 떡 등 제주로 떠날 때보다 더 많아진 짐들로 비행기의 모든 보관 장소는 여지없이 가득 찬다. 그럴 때는 발 빠르게 도움을 드려야 안전하게 짐을 보관하고, 정해진 시간에 비행기가 뜰 수 있다.

내일은 부산에서 제주 다시 대구 그리고 제주로 가서 서울로 가는 날. 해야 할 일들을 체크한 후 어쩐지 더 바쁠 것 같은 내일을 대비해 단잠에 빠져든다.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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