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흑 물질과 공룡 / 리사 랜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2억3000만 년 전부터 육상을 지배했던 척추동물 공룡은 6600만 년 전 무렵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멸종 원인에 대해 딱히 밝혀진 것은 없다. 빙하기, 운석, 화산 등 분분한 의견 사이로 가설 하나가 더해졌다. 암흑 물질(dark matter). 왠지 공상과학(SF)영화에서 악당의 함께 등장할 법한 그 무엇이지만, 하버드대 물리학과 리사 랜들 교수는 ‘암흑 물질과 공룡’에서 공룡의 멸종 원인으로 암흑 물질을 지목한다. 암흑 물질이란, 암흑 물질은 우주에 존재하는 수수께끼 물질로, 보통 물질처럼 중력을 통해서 상호 작용하지만 빛을 방출하거나 흡수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영향은 주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라는 말이다.
‘추측 단계의 시나리오’임을 전제로 랜들 교수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한다. 6600만 년 전 폭이 최소 10㎞ 되는 천체가 우주에서 지구로 곤두박질쳤는데, 그때 공룡을 비롯한 생물 종의 4분의 3이 멸종했다. 천체는 혜성일 확률이 높은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랜들 교수는 아무도 모르는 원인이 바로 암흑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혜성이 원래의 궤도에서 이탈한 이유는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은하면 속에 담긴 암흑 물질의 원반을 통과하느라 교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설명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우주는 정의상 하나의 개체이며, 그 구성 요소들은 이론적으로 모두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랜들 교수는 설명한다.

그래서겠지만, 암흑 물질은 물리학은 물론 천문학, 입자 물리학, 우주론 등에서 과학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분야다. ‘우주 정복’ 같은 자극적 용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잘 알려진 것, 즉 보통 물질에만 집착하면 정작 중요한 우주의 탄생·진화, 은화와 별들의 진화, 생명의 탄생 등 우주론적 빅퀘스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랜들 교수의 생각이다. 보통 물질은 “암흑 물질의 씨앗에 의존해 구조를 형성”했기 때문에 암흑 물질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야말로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보통 물질과 암흑 물질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 암흑 물질 간에도 상호작용을 한다. 랜들 교수는 이를 ‘재미 삼아’ 암흑 빛(dark light) 혹은 ‘암흑 전자기력(dark electromagnetism)’이라고 부르자고 한다. 암흑 물질이 중력 외에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지 않는다고 알려졌지만 “새로운 암흑 물질 요소는 오로지 이 새로운 종류의 빛만을 방출하고 흡수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물질에 얽매여온 지난 과학의 역사를 되풀이하면 공룡의 멸종 이유도 우주의 역사도 밝힐 수 없기에, 랜들 교수는 제5의 힘, 즉 암흑 전자기력에 주목해 보자고 강조한다. 그는 대담한 가설을 펴면서도 암흑 전자기력 외에도 알려지지 않는 ‘모종의 다른 힘’이 있을 수 있다는 열린 학문적 태도를 견지한다. 공룡을 멸종시키고, 우주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암흑 물질 혹은 또 다른 어떤 물질 등 “보이지 않는 권력자”들이라는 것이다.
‘암흑 물질과 공룡’은 우주를 형성하는 암흑 물질의 역할과 영향에 대한 단순한 주장을 나열한 책이 아니다. 치밀한 추론 과정을 통해 그것이 공룡의 멸종 등 다양한 과거 사건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지금 주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결국 이 책의 미덕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존을 믿고 끈질기게 추론 과정을 펼치고 있는 랜들 교수의 연구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암흑 물질과 공룡’은 과학지식이 일정 부분 뒷받침되어야 읽기 용이한 책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다양한 학문의 세계를 오가며 비교적 쉽게 설명한 랜들 교수의 집요한 노력과 더불어 ‘과학 전문’ 번역가 김명남의 번역을 신뢰할 만하기 때문이다. 신선한 자극에 굶주린 독자라면 이번 주말에는 ‘암흑 물질과 공룡’이 제격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기획회의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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