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대표 스스로 꼽는 인생의 스승은 대법원장을 지낸 조부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이다. 스물셋에 비서를 시작하면서 정치를 배웠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부터 우리나라 야당 인사들을 거의 다 만나보고 그 사람들 행태를 다 봤다”고 회고했다. 그때가 1963년이니까 정치에 입문한 지 50년이 넘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경제민주화 소신과 가인의 토지개혁 구상을 연속성 있는 테마로 파악했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 시스템이 붕괴한다는 게 그 핵심이다. 가인이 토지개혁을 공산화를 막는 보루로 여겼듯이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가 시장경제를 지키는 보루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김 대표는 독일 유학 때 조세제도 중심의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서강대에서 강의했고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노태우의 6·29선언 직후 국회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았다. 그때 탄생한 것이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경제민주화 조문(제119조 2항)이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민정당 정책위의장 시절 경제민주화를 주도했다는 설도 있지만, 정작 남 전 장관은 “헌법 119조 2항은 김종인 위원장이 마지막 손질까지 해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별도 보고해 ‘오케이’ 받은 것”이라고 확인했다.

김 대표는 정치 생애 대부분을 경제민주화 책략을 헌책(獻策)할 군주를 찾는 데 보냈다. 2012년 대선 전에는 박근혜 후보를 만나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어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경제민주화는 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그의 존재감도 사라졌다. 김 대표는 4·13총선 전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됐다.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거여(巨與) 새누리당과 싸우고 친노(친노무현)그룹과 투쟁하면서 더민주를 원내 1당으로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 경제민주화만 좇아온 그의 정치 여정은 언제쯤 종착지를 찾을 수 있을까.

△1940년 서울 출생 △중앙고 졸 △한국외대 독일어과 졸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석·박사 △서강대 교수 △대통령 경제수석 △제11·12·14·17·20대 국회의원(5선 의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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