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기간 미 해병대 1사단에서 미군 참전용사 출신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왼쪽)이 월트 톰슨(가운데), 바이올리니스트 케네스 고든과 함께 공연하는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
6·25전쟁 기간 미 해병대 1사단에서 미군 참전용사 출신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왼쪽)이 월트 톰슨(가운데), 바이올리니스트 케네스 고든과 함께 공연하는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
참전했던 ‘피아노 거장’ 번스타인 訪韓, 27일 ‘특별 연주회’

6·25전쟁 미군 참전용사인 ‘피아노의 거장’ 세이모어 번스타인(89·사진)이 유엔 참전용사 70여 명과 함께 방한한다. 그는 오는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리는 참전용사 위로 감사 만찬에서 전우들을 위한 특별한 연주를 들려준다.

번스타인은 1950년 12월 23세의 나이로 미8군 소속 일병으로 참전해 피아노를 ‘무기’로 최전선을 누비는 특별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국가보훈처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당시 최전방에서 개최된 공연들은 언덕 밑에 업 라이트 피아노를 배치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며 전쟁터의 피아노 연주회를 떠올렸다. “군인들은 언덕배기에 앉았고, 공군은 적군의 포격에 대비해 하늘에서 공연장을 지켰다. 8개월 동안 우리는 최전방에서 100여 차례 공연을 했다. 제임스 밴 플리트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나중에 서울로 초대해 특별 공연을 갖기도 했다”고 밝혔다. 최전방에서 돌아온 그는 서울교향악단과도 협연을 가졌다. 서울과 대구, 부산 등지에서 한국인을 위한 콘서트도 열었다.

최정식 국가보훈처 홍보팀장은 “전쟁 당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던 전우들에게 피아노 연주로 위안과 용기를 선사했던 번스타인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던 ‘6·25전쟁의 피아노 선율’을 다시 들려주기 위해 바쁜 일정에도 짬을 내어 방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52년 11월 전역한 번스타인은 미 정부의 동성훈장과 유엔종군기장을 수여받았다.

번스타인이 6·25전쟁 참전 노병이었다는 사실은 지난 4월 미국 영화배우 이선 호크의 감독 데뷔작인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가 개봉될 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번스타인은 “최전선에서 피아노 선율을 들려준 위문행사는 제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회상한다. 번스타인은 미군 병원선에서 6·25전쟁 참전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케네스 고든과 함께 부상자들을 위해 공연하기도 했다. 번스타인은 1955년과 1960년, 1970년, 모두 세 차례 연주회와 자서전 소개를 위해 방한했다.

그는 “1955년 서울교향악단 지휘자였던 존 김의 초청으로 연주회를 하고 열흘 동안 한국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또 1960년에는 미 국무부 후원으로 콘서트와 레슨, 상급반 수업을 하러 한국에 왔으나 4·19혁명으로 공연이 취소되자 개인 연주에 나섰다. 번스타인은 “클라리넷을 잘 다뤘던 월터 매카나기 전 주한미국대사와 함께 서울대병원으로 피아노를 옮겼다”면서 “당시 시위에 나선 학생들 편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주를 해도 된다는 미 대사의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시위과정에서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해 서울대병원에서 연주하는 번스타인의 모습은 이후 세계 각국에 방영됐다.

24일 기자회견을 여는 번스타인은 6·25전쟁 기념식에 참석하고 판문점을 둘러본 뒤 28일 출국할 예정이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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