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규 서울대 교수·경영학

한국과 중국의 기업을 비교할 때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지만 매우 심각하게 잘못된 표현이 있다. 바로 ‘중국이 한국을 추격한다’는 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도대체 무슨 말일까?

유엔에서는 2년마다 세계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1등 하는 품목의 수를 국가별로 발표한다. 2015년 연초에 발표된 가장 최근 통계지표를 보면 한국은 겨우 65개 품목에서 1등을 하고 있지만, 중국은 1538개 품목에서 1등이다. 단순 계산해도 한국 대비 약 24배나 많다. 이런 통계지표를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중국이 우리를 추격하는 게 아니라, 중국은 이미 우리가 추격하기엔 너무 멀리 가 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최근 한국과 중국의 상대적 차이를 보여주는 또 다른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300여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제시한 ‘중국이 한국보다 혁신(革新) 속도가 빠른가’ 하는 물음에 응답 기업의 84.7%가 ‘그렇다’고 답했고, ‘중국이 100㎞ 속도로 변화할 때 한국은?’이라는 질문에는 평균 70.9㎞라는 답이 나왔다. 또 ‘최고 혁신기업이 시속 100㎞ 속도로 변화한다고 할 때 귀사는 어느 정도인가’ 하는 물음에는 평균 58.9㎞라고 응답했다. 업종별로는 전자 63.8㎞, 자동차 65.5㎞, 조선 57.7㎞, 철강 54.8㎞, 기계 52.7㎞ 등이었다.

한국과 중국 기업의 혁신 속도 차이는 2011~2013년 중 양국이 보유한 세계 1등 품목이 늘어나는 속도에서도 나타난다. 중국은 2011년 이후 매년 약 60개 품목이 늘어난 반면, 한국은 겨우 2개 품목씩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분야가 비록 중국 대비 3~4년의 기술 격차가 있긴 하지만, 한국 기업에서 퇴직하는 인재들을 무려 10배 이상의 연봉으로 싹쓸이해 가는 중국의 공격적인 자세를 생각하면 더욱 걱정스럽다.

IT를 중심으로 혁신 강국이라고 하던 한국 기업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쇠퇴한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기업의 경영 목표 설정 관행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기업은 매년 창조적 혁신을 기반으로 생산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개선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여야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전년 대비 매출액 성장률 10%를 가장 중요한 경영 목표로 설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출액을 무리하게 늘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마케팅 예산과 인력을 늘려야 하고, 제품의 수도 가능한 한 많은 게 유리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손실이 발생할지라도, 눈앞에 이익이 보이면 무리한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

전년보다 매출액을 늘리기 위해 많은 기업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대안이 기존 제품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점진적 혁신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점진적 혁신은 기업의 본원적인 경쟁력을 오히려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단기 성과나 단기 매출에 집중하기 때문에,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매우 창의적인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단기 매출액과 점진적 혁신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전문 경영자들의 계약 기간이 대부분 1년 또는 3년 단위로 갱신되는 것이다. 경영자들이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최근 조선 및 해운 산업이 잘 보여준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정부·기업·국민 모두가 불가능을 극복하는 창조적 지혜가 절실하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