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관님, 오해하지 마시고요.”
진행자는 민족당 계열이 아니었지만 서동수에게 반감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40대의 진행자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 걸그룹은 나쁜 소녀들이란 이름입니다. 침대에 있는 여자들이 아니에요.”
“아이고, 실례.”
서동수가 웃으면서 대답하는 바람에 유병선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진행자를 향해 던지고 싶었다. 시청자 중 80%는 서동수에 대해 ‘속물’ 이미지를 각인하고도 남았다. 그때 득의양양한 표정이 된 진행자 정도령이 고정규를 향해 말했다.
“자, 고 후보님. 시사 문제를 양념으로 잠깐 드리지요.”
정도령의 시선은 부드럽다.
“이번 포겐 자동차의 배기가스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가 사전에 관리 감독을 철저히 했어야지요.”
“그렇군요.”
정도령이 추임새를 넣었고 고정규가 말을 이었다.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정부가 서둘러야 합니다.”
“그럼 잘못은 포겐사도 있지만 정부 측에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정부 잘못이 큽니다. 꼭 시정되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도령의 시선이 서동수에게 옮아갔다.
“서장관께선, 아니, 서 후보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뭘 말입니까?”
서동수가 불쑥 되묻자 방청석의 유병선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고 배드걸 4명은 까르르 웃었다. 그러자 기분이 상한 정도령의 눈썹이 조금 좁혀졌다.
“포겐사의 배기가스 유출 말입니다. 물론 고 후보님과 같은 의견이시겠죠?”
이것도 골탕먹이는 방법이다. 시청자는 고정규 주역, 서동수 조역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때 서동수가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머리를 저었다.
“나는 생각이 전혀 다릅니다.”
그 순간 유병선이 숨을 멈췄고 정도령의 눈빛이 강해졌으며 시청자들은 긴장했다. 그때 정도령이 말했다.
“시간 드릴 테니까 뭐가 다른지 말씀하시죠.”
옆쪽 고정규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도 TV 화면에 드러났다. 그때 서동수가 말했다.
“포겐사 본사나 한국 임원들이 고압적이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그럼 포겐사가 문제란 말씀입니까?”
“문제는 한국 국민입니다. 포겐사를 그렇게 만든 건 한국 국민이에요.”
정도령이 눈을 치켜떴고 반쯤 벌린 입술 끝에 희미하게 경련까지 일어났다.
“한국 국민이 문제라고 말씀하셨어요?”
비명처럼 정도령이 되물었을 때 유병선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앉았다. ‘망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그때 서동수가 말했다.
“배기가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포겐사 제품 판매 대수가 늘어났더군요. 공격적인 판매를 했다지만 생산자는 구매자의 반응을 보고 상황에 대처하는 법입니다.”
정도령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 국민은 배기가스 문제보다 차 값이 싸진 것에 더 관심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만든 국민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