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戰後 국제질서 균열

美·英 동맹이 주도해 온
자유무역·국제주의 ‘흔들’
EU 회원국 응집력 떨어져
핵심질서 경제통합 끝날수도

WP “‘역사의 종말’의 종말”
‘팽창주의’ 中·러 가장 이득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미·영 관계에 균열이 가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영 동맹이 주도한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자유시장경제와 다자 경제·안보기구를 중심으로 한 국제주의라는 양대 축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유일 ‘슈퍼 파워’인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영국마저 고립주의로 회귀하면서 대서양을 사이에 둔 앵글로색슨 동맹은 크게 약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 세계에서 보호무역 물결이 확산하고,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탈민주주의 움직임도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 서구가 냉전 붕괴 이후 선언했던 “‘역사의 종말’이 종말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 자국이해 우선하는 고립주의로 회귀하나 = 뉴욕타임스(NYT)도 “영국의 EU 탈퇴는 세계 최대 단일 시장인 EU뿐 아니라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것”이라면서 “20세기 초 유럽을 피의 갈등 속으로 몰아넣었던 민족주의를 제어하고,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전후 컨센서스(합의)도 훼손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먼저 전후 컨센서스가 만들어낸 EU라는 최대 실험이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다. 브렉시트 이후 회원국들의 응집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프랑스·네덜란드 등에서도 EU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WP는 “세계화가 이를 주도했던 미·유럽 각국에서 추동력을 잃게 되면서 전후 질서의 핵심인 경제통합이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통합뿐 아니라 외교·안보 국제주의도 전후 70여 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했다. EU의 구심점이 약해지면 유럽의 다자안보기구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흔들릴 수 있고, 이는 유럽을 넘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미주기구(OAS) 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댈리버 로핵 선임연구원은 이날 논평에서 “미국이 전 세계 자유시장과 자유민주주의에 행사하던 영향력이 줄 수밖에 없고, 구심점을 잃은 나토 내부에서도 회원국 간 신뢰가 손상될 것”이라고 말했고, 필립 르 코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CNBC 기고문에서 “미국이 영국이 아닌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국제질서를 재정의해야 하는 것은 이제 현실이 됐다”고 지적했다.

◇권위주의체제 중국·러시아가 힘의 공백을 메우나 =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이후 가장 이득을 볼 국가로 아시아와 유럽에서 각각 팽창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국·러시아를 지목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우크라이나·시리아 사태 등에서 미국에 반대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중국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해 미국 주도 경제질서에 반기를 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브렉시트 직후인 25일 정상회담을 여는 등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코리 셰이크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는 유럽 통합의 절정은 지나갔다는 것을 알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면서 “미국은 동맹을 잃었고, 러시아 같은 우리의 적들은 힘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은 유럽에서 영국을 대신하는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독일이 가장 적합한 미국의 유럽 핵심 동맹국으로 꼽히지만,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도 전투부대 육성을 망설이는 등 적극적인 안보 역할을 떠맡는 데 소극적이며, 프랑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재개 등 여러 사안에서 미국과 다른 입장을 보이는 등 가끔 독자노선을 걷는다는 점에서 영국 같을 수 없다”고 NYT는 분석했다.

◇국제정치에 ‘무극’ 시대로 = 이 때문에 앞으로 전 세계는 어떤 한 국가도 세계 질서 유지를 위한 강력한 힘을 구사할 수 없는 무극(nonpolar)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냉전 시대 미국과 구소련의 양극 체제가 1990년대 냉전 붕괴 이후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로 전환했는데, 이번 브렉시트로 미국의 영향력 쇠퇴가 확인되면서 누구도 강자라고 할 수 없는 무극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회장은 저서 ‘리더가 사라진 시대(Every Nation For Itself)’에서 무극 시대를 글로벌 리더십의 진공상태를 뜻하는 ‘G제로’ 시대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는 “앞으로 5년 뒤면 영국은 핵심 유럽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떨어져 나가고 유럽 통합이라는 실험은 실패할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분열하고 충돌하는 무극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정치에서 무극 체제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대니얼 플렉타 외교·국방 담당 선임 부회장은 “브렉시트는 고립주의·포퓰리즘의 복귀를 알리는 경고음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이 재연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
신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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