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보험범죄 실태

입원 필요없는데 입원확인서
미용用 ‘백옥주사’가 치료로

눈앞의 이득에 범죄 인식 부족
영세한 의원들 쉽게 유혹 빠져

도수치료 등 비급여 실태 조사
30병상이상 병원급 한정 ‘허점’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C 의원 원무과장은 올해 4월 보험설계사와 짜고 환자들이 실손보험금으로 수술비를 낼 수 있도록 진료 내용을 ‘미용’이 아닌 ‘치료’ 목적으로 조작했다. 범행을 도운 보험설계사는 환자가 병원에 낸 입원비 중 현금의 5%를 이른바 ‘뽀찌(돈을 딴 사람이 건네는 사례)’로 챙겼다. C 의원은 결국 실손보험금을 탈 수 없는 미용 목적의 ‘가짜’ 환자 유치를 통해 보험금 등 7억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 소재 D 의원의 상담실장은 지난해 7월 하지정맥류로 찾아온 환자에게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보험금을 활용해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혈관내레이저치료(EVLT)’를 이용한 하지정맥류 수술은 입원이 필요 없다. 하지만 D 의원은 환자들이 보험금을 최대한 받아 수술비를 낼 수 있게 허위로 입·퇴원 확인서를 발급해 줬다. D 의원은 이 같은 방식으로 환자들을 유치해 보험사로부터 7억7600여 만 원을 받았다.

서울에 있는 B 안과는 2년 전 시력 교정을 위해 고가의 시력교정렌즈삽입술을 한 뒤, 백내장수술을 한 것처럼 허위진단서를 발급했다. B 안과는 이 같은 방법으로 24개 보험사로부터 2억9000만 원 상당의 실손보험금을 치료비로 받아 챙겼다.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이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보험사기의 ‘표적’이 되고 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의원급 의료기관이 경영난과 환자 유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실손보험을 악용한 보험사기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29일 금융감독원과 보험연구원 등에 따르면 보험사가 의원을 이용한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금 중 비급여 의료비 비중은 76.0%로 종합병원(59.2%)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의료기관 규모가 작을수록 비급여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라는 얘기다. 특히 도수치료(맨손 통증 치료)가 필요한 ‘근골격계통 질환’ 관련 실손보험금 청구 비중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도수치료는 일부 병원이 보험사기를 저지를 때 자주 악용하는 치료 방법으로 꼽힌다.

금감원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벌인 실손보험 보험사기 기획조사 결과를 보면 적발된 36개 병원 중 절반인 18곳이 도수치료 등을 이용해 치료 횟수와 금액을 부풀렸다. 이들 병원은 도수치료와 고주파온열치료 횟수 등을 실제보다 부풀려 영수증을 발급해 환자가 실손보험금을 받도록 도왔다. 일부 병원은 환자를 소개한 사람에게 ‘뒷돈’을 주는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

한 병원은 피부 마사지와 같은 미용 목적의 시술을 상해사고로 인한 도수치료인 것처럼 꾸며 영수증을 발급해 주기도 했다. 피부를 아기처럼 뽀얗게 만들어 준다고 해 ‘백옥주사’ ‘마늘주사’ ‘신데렐라주사’ 등으로 불리는 ‘알파리포산주사’도 치료 목적으로 둔갑해 환자들이 시술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보험금을 타낼 수 있도록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손보험을 악용한 보험사기는 고도로 진화한 범죄 수법을 이용하는 게 아닌 도수치료같이 관리·감독이 허술한 점을 파고든다”며 “특히 규모가 영세한 병원일수록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는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자료를 발급한 의사의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보험사기를 걸러 내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죄의식 없이 수익을 내기 위해 불필요한 진료를 유도하는 병원의 과잉진료 행태가 보험사기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실손보험에 가입했느냐’고 물어 의료쇼핑을 유도하고 과잉진료를 하는 이유는 이게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당장 눈앞에 이득을 취하려는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으로 실손보험을 악용한 범죄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크림 스키밍은 본래 우유에서 크림(달콤한 부분)을 분리한다는 의미인데, 이익이 많이 창출될 것으로 판단되는 시장에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상을 말한다. 수익을 더 많이 내기 위해 과잉 비급여 치료를 하는 일부 의료기관의 행태가 결국 보험사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는 9월 30일부터 시행되는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는 비급여 진료실태 조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소관 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조사대상을 ‘병상 30개 이상 병원’으로 한정했다. 실손보험의 허점을 악용하는 곳으로 꼽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정작 조사대상에서 빠진 꼴이다.

이에 보험업계와 소비자단체 등은 개정안이 시행되기도 전에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영세한 병원일수록 실손보험을 이용한 보험사기를 많이 저지른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병상 30개 이상으로 조사대상을 제한한 것은 결국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실손보험은 국민 대다수가 가입한 보험인 만큼 보험사기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정부는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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