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랬다. 나보다는 가족의 안위와 생계에 대한 걱정이 늘 앞섰고 내 꿈보다는 동생의 미래가 우선이었다. 1950년 흥남 부두에서 아버지, 여동생과 생이별한 ‘덕수’는 전후 혼란과 궁핍, 파독 광부, 월남전 파병 등 현대사의 거친 격랑을 온몸으로 견디며 가족을 지켰다. 노년의 덕수가 반세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행복했을까? 영화 ‘국제시장’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에서는 우리나라의 OECD 가입 2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초 파리의 외교관과 사무국 직원 대상으로 국제시장을 상영했다. 오디토리엄을 채운 푸른 눈의 OECD 직원들은 덕수의 삶을 지켜보며 우리가 웃을 때 웃고 눈물 흘릴 때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경제개발 역정에 숨겨져 있는 우리 부모 세대의 피와 땀과 눈물을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이 단순한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우리 부모들의 처절한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험난했던 현대사의 굴곡을 넘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삶은 행복한가?
지난 60년간 연평균 7.3% 경제성장이라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는데 막상 우리 국민은 그리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나타난 한국인 행복도는 50위권이다. 행복을 비교하고 나라 줄 세우는 게 마뜩지는 않지만 우리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 내외로 189개 나라 중 32위인 걸 생각하면 소득보다 행복 순위가 낮다. 청년 실업, 아이 낳기 꺼리는 커플, 열악한 일자리의 비정규직, 미세먼지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문제와 고민을 떠올리면 그럴 법도 하다 싶다. 경제정책의 목표가 더 많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일 터인데 그렇다면 뭔가 달라져야 할 것이 많다.
행복을 찾는 길은 경제성장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과 우선순위가 다르고 또 다양한 행복요소 간의 상충, 정책수단과 연결고리 등 방법론적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러나 삶의 다원적 가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기존 성장 위주 발전전략의 적절성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국제사회에서도 성장 일변도의 전략에서 벗어나(Beyond GDP) 공평하고 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통해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견해가 커지고 있다. 특히 OECD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고실업, 분배 악화가 지속되자 ‘경제적 도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라는 이니셔티브 아래 경제 발전의 목표를 행복(웰빙)으로 보고 다차원적인 포용적 성장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행복을 위해 성장의 양적 측면뿐 아니라 성장 과실의 공유, 고용·건강·환경 등 질적 요소들이 균형 있게 개선돼야 한다고 주창한다. 행복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를 개발, 매년 발표하고 있다. 최근 삶의 질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고용, 교육, 시민참여 등은 조사 대상 38개국 중 상위권이지만 환경, 공동체, 일과 삶의 균형 등은 하위권으로 개선 여지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의 행복 찾기는 작금의 상황에서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밖으로 경쟁과 혁신이 가속화하고 일자리의 미래가 불안한 가운데 안으로 정책 목표에 대한 갈등과 가치관의 충돌, 성장동력 약화, 불평등과 보상 시스템의 공정성 등 근본적인 난제가 많다. 이를 풀기 위한 여정에서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OECD 사례는 좋은 길잡이다. 그렇다고 국가행복도 최상위에 소득 6만 달러가 넘는 북유럽 나라를 따라 하자는 건 아니다. 그러기엔 여력이 너무 부족하고 배경이 달라 귤나무에 탱자 열릴까 두렵다.
그러나 오랜 기간 축적된 OECD의 발전 경험과 모범 관행은 불확실한 미래에 우리가 걸어갈 방향과 구조개혁을 위한 실행 전략을 정하는 데 훌륭한 내비게이터이다. 우리 대표부에서는 이러한 OECD 정책 사례와 논의 내용을 매주 정책 브리핑(www.facebook.com/oecdkorea)으로 정리해 국내에 알리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덕수가 희생과 헌신으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대한민국 행복 찾기’에 나설 때다. 치열한 고민과 생산적인 논의, 유연한 대응과 포용적 자세, 법과 원칙 준수, 사회적 신뢰 확보를 통해 보다 많은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처절한 노력 없이 우리 앞의 난제를 해결하는 도깨비 방망이는 없다.
◇ 윤종원(56) △제27회 행정고시 △UCLA 경제학 박사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 서기관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선임자문관 △재정경제부 종합정책과장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IMF 상임이사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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