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

김대중정부 시절에 건강보험을 통합하면 젊어 일할 때 보험료(保險料)를 능력에 맞게 내고 은퇴하면 젊을 때 낸 보험료 덕에 적은 부담으로 의료보장을 누린다고 선전했다. 그런데 통합 이후에 직장 다니는 자식이 없는 은퇴자는 지역가입자가 돼 재산에도 보험료를 내야 하니 직장 다닐 때보다 보험료가 더 많은 폭탄이다. 건강보험 통합 직후부터 부과체계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김대중정부 때부터 이를 고치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부과체계 개혁이 안 돼 연간 민원이 6000만 건이 넘는다. 문제가 있는데도 왜 못 고치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 개혁이 가능하다.

첫째, 건강보험 통합의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보 통합은 관리 통합은 물론 재정 통합과 함께 부과체계가 통일돼야 한다. 통일된 부과체계의 원칙이란 재정을 같이 사용하는 사람이면 돈 내는 방식도 같아야 한다는 원리다. 전 국민에게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는 통일된 기준은 소득밖에 없다. 이 대원칙을 모르니 소득 신고가 안 되는 사람에게는 사는 집에라도 보험료를 매겨야 한다는 발상이 퇴직자들에게 ‘보험료 폭탄’을 안기게 된 것이다.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면 지역가입자에게 적용하는 종합과세소득을 직장가입자에게도 적용하고, 무임승차하고 있는 피부양자 2000만 명 가운데도 종합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험료를 매기면 공평한 방안이 된다.

둘째, 지역가입자들의 열악한 생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험료는 국민이 국세청에 신고한 소득 자료를 근거로 건보공단이 부과하는 것이지, 공단이 직접 소득조사를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사용률이 높아 사업소득은 거의 신고가 된다. 소득신고가 안 되는 지역가입자가 많은 것은 세금 탈루를 위해 부정직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업자 번호가 없는 농어민이나 행상과 같은 영세민, 그리고 상당수의 차상위 계층들 때문이다. 언론이 떠드는 고소득 자영자는 전부 직장가입자로 돼 있다.

지역가입자들의 재산 실태를 보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개 영세민이다. 지역가입자의 72%가 재산이 전혀 없다. 집이 없어 전월세를 살고 있는 재산액이 900만 원이 안 되는 지역세대가 무려 26%인데 이들에게도 재산보험료를 매기고 있다. 이들에게 재산보험료는 가난에 대한 징벌과 같은 조치다. 신고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는 근로자 기준 최저 보험료를 정액으로 부과하고, 정액도 내기 어려운 차상위 계층의 보험료는 정부가 지원하면 된다. 그렇게 하라고 1988년부터 국고지원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는가? 고액 재산가로 소득신고가 턱없이 낮은 사람들은 공단이 국세청에 신고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소득의 정확도를 따져 보험료를 제대로 거두는 것이 정도다.

셋째, 정치권의 무관심과 무능 때문이다. 보험료 부과체계를 보건복지부에만 맡기니 개혁에 한계가 있다. 종합소득을 기준으로 하려니 고소득 근로자가 반발하고, 일용 근로자를 직장가입자로 하려니 사용자가 반대하고, 국고 지원을 늘리려니 기획재정부가 반대해 복지부 단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건강보험을 통합할 때는 정치권만이 아니라 시민단체들까지 나섰다. 통합의 핵심인 부과체계 문제를 복지부에만 떠맡기는 것은 통합을 주도한 정치권의 무책임과 무능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 더불어민주당이 칼을 뺐으니 정부와 여야가 합심해 원칙 있는 건보 제도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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