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묘 · 성균관

문묘(文廟)와 성균관(보물 제141호)은 서울 안에서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정작 관람객들에게는 가장 홀대받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고궁의 아름다움 하면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이 먼저 생각나고, 조선 왕조의 국가적 제례 하면 종묘(宗廟)가 우선 떠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균관대 안에 위치해서 문묘 및 성균관을 성균관대와 동일시하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문묘와 성균관은 조선시대 제사와 교육의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어느 것보다 가치가 높은 문화재다. 문묘는 쉽게 말해서 한국과 중국의 뛰어난 학자들의 위패를 안치한 제사당이고,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부임 7년(1398년) 만에 처음 세웠다. 이후 정종 2년(1400년)에 불에 탄 것을 태종 7년(1407년)에 다시 지었고, 임진왜란에 또다시 소실된 것을 재건했다.

문묘와 성균관은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동무·서무 등 제사를 위한 공간, 명륜당(明倫堂·사진)을 중심으로 동재·서재 등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크게 나뉜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해 증자·맹자·안자·자사 등 5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 10인, 송조육현(宋朝六賢), 조선 18현의 위패가 있다. 모두 39명이다.

명륜당은 대성전 뒤편에 있다. 대강당의 형태인데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동재와 서재는 기숙사다. 각 재는 14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으며 방 1칸에는 5명이 함께 생활했다. 방마다 ‘수기실(修己室)’ ‘지신실(知新室)’ 등으로 이름도 붙어 있다.

동재에는 조그마한 북이 하나 매달려 있다. 유생들의 생활을 규율하던 북이다. 북소리 1회는 기상, 2회는 의관 정제, 3회는 조식을 뜻했다. 북소리를 듣고 깨어난 유생들은 몸과 의복을 정리한 후 진사식당(進士食堂)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명륜당 뒤쪽에 있는 존경각은 도서관, 육일각은 활과 화살을 보관했던 곳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유생들에게 문무를 겸비한 학업을 지속해왔음을 알 수 있다.

명륜당 뜰의 은행나무도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수령이 4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문묘에서 인상적인 것은 동재와 서재의 툇마루다. 재를 따라 뒤편에 복도처럼 들어선 툇마루는 건축적 조형미와 함께 안락함을 준다. 관람객들이 유일하게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1일 기자가 방문한 날엔 서울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잠시 동재 툇마루에 걸터앉아 비를 피하는데 소나기가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모양과 소리가 참 운치 있었다. 비오는 날에 문묘에 가볼 것을 꼭 권하고 싶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문묘와 성균관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문화재청은 종로구청과 함께 지난해부터 생생문화제 사업의 일환으로 ‘성균관에서의 하루’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조선 유생들이 입던 한복을 입고 인문학을 배우는 자리다. 1인 반나절 유생 체험에 1만3000원의 참가비가 있으나 의외로 신청자가 많다. 지난해 목표로 했던 연간 10회 프로그램이 모자라 30회로 늘어났고, 올 상반기에도 약 400명이 체험에 동참했다. 하반기에는 1000명 정도로 예상된다. 프로그램의 최고 장점은 일반 관람객들이 들어갈 수 없는 명륜당 내부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 주로 학생들이 단체로 참여하고 있으나 가족 단위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므로 주말을 이용해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