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대 리처드 탈러 교수와 캐스 선스타인 교수가 집필한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진 ‘넛지(Nudge)’의 핵심은, 어떠한 행동을 직접적으로 금지하거나 적극적으로 조장하지 않는 자유주의적 개입 방식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의 종류 대신 진열 방식을 바꿔 소비를 변화시키는 것이 넛지의 한 예다.
전통적 가족농으로 특징지어지는 우리 농업은 1970∼1980년대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인적·물적 자원이 유출되면서 성장잠재력이 크게 약해졌다. 1990년대 이후 시작된 개방화 과정에서 농업의 경쟁력 제고와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많은 대책과 재정이 투입됐음에도 농업 생산성이나 소득 증대, 농촌 주민들의 삶의 질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의 일단은 지난 20여 년간의 개방화 과정에서 임기응변적 타협에 의한 개방 농정 프레임에 있다고 본다.
박근혜정부 들어서 스마트팜과 들녘경영체를 통한 경쟁력 제고, 중소농 대상의 6차 산업화, 그리고 고령농에 대한 배려농정을 시도하면서 작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체감하는 성과를 확산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의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농정의 프레임과 추진 방법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농업이 성장·발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접목해 경쟁력을 높여야 하지만, 영세 고령농에 이를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나온 대안이 바로 정책 대상인 농업 경영체의 유형별로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고 추진하자는 제안이다.
2015년 기준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159만 경영체를 분석한 결과, 65세 미만으로 영농 경력이 5년 이상이면서 조수입(粗收入)이 연간 5000만 원 이상인 전문농이 12만9000호, 같은 조건이지만 조수입이 3000만 원 이상인 일반농은 65만9000호로 나타났다. 또한, 65세 이상 고령농은 69만 호, 65세 미만이면서 영농 경력이 5년이 안 되는 창업농은 12만1000호였다. 이처럼 경영체 간 연령, 경영 규모나 조수입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에도 지금껏 이러한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 정책을 추진해 왔으니 체감하는 농정 성과를 얻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전문농은 기술과 자본 집약적 스마트팜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전문 경영체로 육성하고, 일반농은 조직화나 6차 산업화 등을 통해 규모화하며 새로운 소득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아울러 농고·농대 졸업자나 귀농자는 철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신규 창업농으로 적극 육성하고, 고령농의 경우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농업 자원이 보다 효율적인 경영체로 집중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처럼 농업 경영체의 특성에 따라 정책 대상을 세분화해 재정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 맞춤형 정책의 기본 구상이다.
물론 고령농으로부터 전문농으로 농업 자원을 이관하거나 기술과 경영 능력을 갖춘 젊은 경영체를 육성하는 것은 한두 해 만에 이룰 수 없는 중장기 과제다. 하지만 개방화의 파고에 맞서 우리 농업·농촌이 체질을 개선하고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록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도 농정 패러다임을 바꿔 방향성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런 점에서 ‘경영체 유형별 맞춤형 정책’은 농업 자원과 재정의 전략적 활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 농업·농촌을 건강하게 만드는 ‘넛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맞춤형 농정의 성공을 위해 정책 관리자는 물론 농업인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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