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長篇)소설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아마도 분량에서 오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200자 원고지 1000장 이상이나 되는 건 읽기에 결코 만만한 분량이 아니다. 이를 써내기 위한 작가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지만 책을 대하는 독자들도 기대와 동시에 부담감을 가질 수 있다.
등단 20년 된 조경란(사진)의 이번 책은 무엇보다 이런 고민에서 해방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독립된 이야기 수십 편으로 소설집을 꾸렸다. 한 편의 분량이 원고지 20∼30장에 지나지 않는다. 단편(短篇)보다 더 짧다. 콩트로 불리는 장편(掌篇)·엽편(葉篇)소설이다.
저자는 지난 6일 “장편소설의 전통적인 형식을 벗어나 단편도 장편도 아닌 순수한 이야기를 복원해 보고 싶었다”며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제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썼다”고 밝혔다.
책에는 첫 에피소드인 ‘백설공주 유모와 (몇 번째인지도 모를) 난쟁이’부터 마지막 ‘시작이다’까지 모두 31편의 콩트가 들어 있다. 짧기도 짧지만 콩트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풍자와 유머, 기발한 아이디어와 반전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백설공주 유모와…’는 제목부터가 흥미롭다. 백설공주가 사망한 이후를 상상한 에필로그다. 백설공주는 “일곱 번째 난쟁이를 찾아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유모는 일생을 보낸 궁전을 박차고 나와 수소문 끝에 구두 수선의 전문가가 된 난쟁이를 만난다. 유모는 난쟁이에게 백설공주의 진심을 전한다. 비록 백마 탄 왕자와 결혼했지만, 공주를 진정 사랑해준 난쟁이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뒤늦은 후회였다. 그러나 난쟁이는 ‘쿨’하다. “다 지난 일이잖소. 아무튼 사랑은 어렵지”. 그리고 오히려 진로를 고민하는 백설공주의 딸들에게 조언한다. “뭘 하든 남들하고 비교하지 말라고 전해요. 그냥 그만두지만 말고 계속하라고. 매일매일. 그러다 보면 뭐가 되든 된다고”.
표제작인 ‘후후후의 숲’은 취업준비생인 주인공이 숲 속에서 ‘말테’라는 별명의 남자에게 숨쉬기를 배우는 내용이다. 숲에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상처와 걱정거리를 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부지런히 숨쉬기를 연습하며 서서히 살아갈 힘을 얻는다. 저자는 “요즘 세상이 너무 불안하지 않나. 불행이 곳곳에 있다”며 “잠시라도 안전한 곳을 상상해봤다. 사람들에게 살아 있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드는 글을 써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시작이다’는 주인공의 이웃 신축빌라에 새로 입주해온 배트맨의 이야기다. 새 입주자는 스스로 배트맨이라고 말하지만 외모는 영화 속 히어로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하물며 배트맨이 현실에 있을 리도 없다. 그러나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은퇴한 배트맨은 날지도 못하고 괴력을 발휘하지도 못하지만 사람들을 웃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럼 된 것이다.
콩트에는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짧은 분량 안에 서사의 완결과 문학적 표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군더더기 없는 글과 위트 넘치는 내용으로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