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나이에 현역 클럽챔피언에 오른 노익장 골퍼가 있다. 김상윤(80) 전 삼성엔지니어링 전무다. 그는 지난 4월 롯데스카이힐 제주 골프장 통합 클럽챔피언전에서 당당히 우승하며 최고령 클럽챔프가 됐다. 전국에서 80세에 현역 통합 클럽챔피언이 된 것은 그가 유일하다.
지난달 30일 제주 서귀포시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클럽하우스 한쪽에 마련된 ‘챔피언 라운지’에서 그를 만났다. 기자는 인터뷰 내내 그를 ‘김 챔프’로 칭했다. 김 챔프는 이날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목애희 씨·76)와 오전 라운드를 마친 뒤였다. 아내는 자녀를 대학에 보낸 뒤 50세 넘어서 골프를 시작했지만, 홀인원을 4차례 기록하는 등 남편 못지 않은 골프 마니아다.
챔피언이 된 비결을 묻자 김 챔프는 “쟁쟁한 실력자들이 많았지만 강한 바람에 그분들이 무너졌고, 내게 행운이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회기간 2일 동안 바람이 너무 불어 자신을 포함해 출전자 모두 80타 이상 스코어를 기록했을 정도다. 김 챔프는 “젊었을 땐 ‘인복’과 ‘일복’이 많았는데 말년에 ‘골프복’까지 넘쳐난 것 같다”며 웃었다.
김 챔프는 2014년 9월, 78세 때에 아내와 둘이 제주 서귀포시로 이사를 왔다. 은퇴한 마당에 부부가 골프 외에는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제주가 그런 면에서 최고 거주지였다. 김 챔프는 “제주는 기후에 따라 순한 양이 됐다가, 포악한 늑대가 되기도 하는 등 날씨가 변화무쌍하다”면서 “이런 게 제주 골프의 매력”이라고 자랑했다.
김 챔프는 젊은 시절 직장을 쫓아 미국 이민을 떠났다. 대한석탄공사를 거쳐 호남정유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중 1969년 미국의 한 기업에 스카우트됐다. 뉴욕 벡텔사에서 근무하다 회사가 텍사스 휴스턴으로 이전하면서 함께 이사를 했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 10년 가까이 휴스턴에서 살았다. 그러던 차에 중동에서 플랜트 공사 수주에 성공한 삼성그룹에서 1300도의 고열을 견디는 ‘케미컬 플랜트’의 주요부문 설계 전문가를 찾았고, 2002년 김 챔프를 낙점했던 것. 김 챔프는 이미 65세를 넘겼지만, 기계분야인 ‘플랜트 디자인’ 전문가였다. 플랜트 디자인은 주로 화학 공장이나 정유공장, 발전소, 핵발전소 등 공장 안전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분야. 그는 미련없이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되찾아 아내와 함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노모를 모시기로 한 것도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노모는 아들이 돌아온 지 1년도 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그는 ‘기술 고문’으로 영입됐지만 이후 상무와 전무를 거쳐 78세 때까지 근무했다.
김 챔프는 1974년 뉴욕에서 처음 골프를 배웠다. 골프를 어떻게 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친구를 따라갔다. 골프화가 없어 빌려 신었다가 발이 아파 뒤꿈치가 까져 맨발로 친 기억도 있다. 오로지 독학으로 배웠다는 그는 가끔 아내를 드라이빙 레인지로 데려가 다른 사람의 스윙과 비교하도록 했다. 아내가 “다른 사람들은 백스윙을 빨리하는데 당신은 왜 늦게 하느냐”고 해서 그제야 빠른 백스윙으로 바꿨을 정도다. 이렇게 배운 골프였지만 그는 40대 초반 2언더파까지 치기도 했다. 주 2회 라운드도 힘들 때였다. 삼성근무 시절 매년 한 차례 회사임원 80명이 참석한 골프대회가 열리면 은퇴 직전까지 메달리스트를 도맡아서 했다. 73세 때인 2009년 10월 강원 고성의 파인리조트골프장에서 이븐파 72타를 치며 생애 첫 ‘에이지 슈트’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동안 골프를 잘 친다는 입소문 덕에 ‘사장 조’에 늘 편성되거나 사장들의 모임에도 자주 초대됐다. 김 챔프는 요즘도 에이지 슈트를 밥 먹듯 한다면서 “20차례 정도는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화이트 티를 사용하고도 지난해 제주에 내려와 이븐파 72타를 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딱 2년만 일한 뒤 은퇴할 생각이었다”는 김 챔프는 “회사 측이 번번이 만류하는 바람에 13년 동안이나 근무했다”고 말했다. 2년 전에는 회사 측에 간곡히 요청한 끝에 ‘자연인’이 됐다.
김 챔프는 노후를 본래 강원도에서 보낼 작정이었다. 은퇴 직전 강원 고성의 파인리즈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해 은퇴 후 골프나 실컷 치기 위해 속초시에 아파트까지 장만해 놓고 주말마다 그곳에서 지냈다. 그곳의 회원들이 부부모임을 자주 가졌다. 하지만 워낙 골프를 잘 치는 탓에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살 때도 있어 스코어를 적지 않았다. 스트레스도 받고, 행여 내기로 인해 서로 다툼도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금도 250야드를 보낼 만큼 장타를 날린 덕에 동반자들이 그의 비거리를 보고 ‘60대 초반’으로 보는 때가 많다고 웃었다. 사실 그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경복고 동기동창이다. 김 챔프는 골프는 가족과 함께 칠 수 있어 좋고, 나이가 많아서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골프뿐이라고 말한다.
골프는 ‘보약’이라는 김 챔프는 아내와 함께 매일 라운드를 한다. ‘보약 한 첩 먹으러 가자’는 말로 집을 나서 골프장으로 출발해 어김없이 오전 9시면 라운드를 시작한다. 18홀을 마친 뒤 서귀포 집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고, 오후 5∼6시면 집에 들어와 10시 이전에 취침한다. 몸 관리를 위해 집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는가 하면 집 근처의 헬스클럽과 수영장을 다닌다.
김 챔프는 제주지역 골프장 가운데 롯데스카이힐을 미국의 웬만한 프라이빗 코스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36홀이다 보니 지루할 새가 없고, 300회 이상 라운드를 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존재라는 얘기. 제주 특유의 착시현상이 많아 여전히 그린의 경사를 읽는데 어려움도 따르지만 늘 새로운 골프장에 온 것처럼 설렘을 주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부부가 함께 겨울이면 매년 지인이 사는 동남아(말레이시아)로 3개월간 머물며 ‘동계훈련’도 잊지 않는다.
제주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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